남북관계 국면전환이 예상되는 가운데 통일-외교라인에 무게감 있는 정무형 인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을 비롯한 양측 인사들. 아래 작은 사진들은 통일부 장관 물망에 오른 인사들.
이주영 장관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해양수산부와 함께 현재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부처는 통일부, 외교부, 법무부, 농림축산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이다. 즉 정권 3년차를 맞아 정부 출범 이후 개각이 없었던 대부분의 부처가 개각 대상으로 점쳐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개각의 범위는 미지수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비춰봤을 때, 대규모 개각보다는 소폭 내지는 원 포인트 개각이 될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어느새 국정 하반기에 돌입하며 동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상황과 시기를 염두에 두며 그 규모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몇몇 여론조사기관의 국정지지도 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으로 20%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개각 폭이 커질 경우 유독 관심이 가는 곳은 통일-외교 라인이다. 특히 올해 들어 남북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포착됨에 따라 통일부의 정치인 차출론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거론되는 인사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권영세 주중 대사, 구상찬 상하이 총영사 등 친박계 대표 정치인들이다.
알려졌다시피 윤상현 의원은 현재 정무특보와 또 다른 복수 부처의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는 친박의 상징적 인물이다. 경우에 따라 윤 의원이 통일부에 전격 배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윤 의원의 차출은 곧 새누리당 내 친박 입김 약화를 의미하기에 이 부분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역시 대표적인 친박 인사인 권영세 주중 대사와 구상찬 상하이 총영사도 통일부 장관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권영세 대사는 현재 북한과 특수 관계에 있는 중국의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을뿐더러, 의원 시절 이미 외교통일위원회와 남북관계특위를 거치며 대북 정책에 대한 경험을 쌓은 바 있다. 권 대사는 통일부 장관과 함께 차기 비서실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류우익, 김하중,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은 주중 대사직을 거친 직후 통일부 장관에 오른 바 있다.
한중문화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구상찬 총영사는 오래 전부터 중국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국내 대표적 중국통 정치인이다. 구 총영사는 지난해 10월 중국서 시진핑 주석과 이례적으로 독대를 해 주목받기도 했다. 여기에 그는 의원 시절 당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러한 통일부 정치인 차출설의 배경엔 남북관계의 국면전환이 점쳐지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로 실무형 인사보다는 무게감 있는 정무형 인사가 적합하다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왼쪽)은 이례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독대를 한 바 있다. 사진은 2005년 9월 남북 장관급 회담 중인 모습.
노무현 정부 시절 오랜 기간 남북관계특위에 몸담았던 야권의 한 인사는 “서열정치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북한은 카운트 파트너의 무게감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과거 특위에서도 북측은 현안 소통에 있어서 우리가 아닌 문재인, 안희정 등 정권 실세들과 직접 라인을 대려는 시도를 수차례 목격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실제 북측과 큰일을 기획한다면, 그에 걸맞은 인사를 차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동영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역시 당시 대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이었던 2004년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임하고 통일부 장관에 오른 전례가 있다. 차기 대권주자이자 당대표급 정치인이 통일부의 수장에 오른 파격 차출이었지만, 북한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와 독대하며 예우를 한 바 있다. 대통령이 아닌 정치인이 김정일과 독대한 사례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과 한나라당 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다. 거물급 정치인 차출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러한 차출설의 또 다른 배경에는 류길재 현 통일부 장관의 ‘무능론’이 있다. 한 대북민간사업기관 관계자는 “오랜 기간 류길재 장관을 지켜봤다. 훌륭한 학자임에 틀림없지만, 장관으로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학계로 돌아왔을 때 어떤 수모를 겪을까 걱정이 들 정도”라며 “남북문제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바닥인데, 청와대의 입장만 따라갈 뿐 전혀 조정자로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류길재 장관 본인의 문제보다는 장관급 자리에 다소 부족한 인사를 앉힌 청와대의 책임이 더 크다”고 비판했다.
이미 류길재 장관은 지난해 국감에서 야권으로부터 ‘주사급 장관’이란 말을 들으며 수모를 겪은 바 있다. 원혜영 남북특위 위원장 역시 류 장관을 두고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류 장관은 외교 안보실을 장악하고 있는 군 출신 인사에게 눌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통일부는 최소한 남북관계에 있어선 청와대를 끌고 가야 하는데, 오히려 따라가고 있다”고 힐난한 바 있다.
아울러 통일부 개각과 함께 통일-외교 라인의 한 축을 이루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교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병세 장관은 이미 지난해 연말 ‘독도입도지원센터 백지화’ 논란으로 여야 사이에서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 벌써부터 그 후임으로 통일부 장관 내정 가능성도 함께 거론되고 있는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김숙 전 UN 대사 등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