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유승민 의원(오른쪽)과 김무성 대표가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여권 권력구도가 비박계 ‘K·Y 라인’이 당을 장악해 청와대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연말정산 파동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을 거치면서 여권의 권력구도가 하루아침에 ‘청와대 우위’에서 ‘당 우위’로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인사처럼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돌기는커녕 만 2년(2월 25일)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여당이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과 청와대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정국을 주도하는 현 상황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당 우위 정국이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전까지는 새누리당이 지지율을 굳건히 유지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만 지지율 추락세를 보여 왔지만, 최근 들어 당·청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6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2월 첫째 주(3∼5일)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전국 성인남녀 1009명, 휴대전화 RDD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41%, 새정치민주연합 24%, 정의당 4%, 지지정당 없음·무응답 31%로 나왔다.
1월 첫째 주 조사 결과와 비교해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 새누리당 지지율은 3%포인트(p) 떨어지고, 지지정당이 없거나 대답을 거부한 무응답층은 2%p 늘었다. 이번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광주·전라(21%)뿐 아니라 서울(36%), 인천·경기(39%)에서도 40%선이 무너졌다. 부산·울산·경남에서는 47%로 50%선이 무너졌고, 대구·경북에서도 54%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세대별로는 19∼29세(25%), 30대(21%)뿐 아니라 40대(36%)에서도 40%선이 무너졌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일 때에도 새누리당은 줄곧 45% 안팎의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변화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첫째 주 42%를 기록해 처음으로 45% 밑으로 떨어진 뒤 하락을 거듭, 2월 첫째 주에는 30%선도 무너져 29%에 그쳤다. 1월 초까지 박 대통령 지지율만 떨어지던 것이 1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함께 떨어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이런 추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월 2일 발표된 1월 넷째 주(1월 26∼30일) 조사(전국 성인남녀 2500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 및 ARS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0%p)에서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35.9%, 새정치연합 27.5%, 정의당 4.1%, 무당층 29.8% 등으로 나타났다. 1월 첫째 주 40.8%를 기록했던 새누리당 지지율이 둘째 주 39.3%, 셋째 주 38.6%에 이어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새정치연합과의 지지율 격차는 1월 첫째 주 17.2%p에서 둘째 주 18.1%p, 셋째 주 16.4%p, 넷째 주 8.4%p로 급격하게 좁혀지고 있다. 박 대통령 지지율도 1월 첫째 주 43.2%에서 둘째 주 39.4%, 셋째 주 34.1%, 넷째 주 32.2% 등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국가혁신 업무보고에 참석한 박 대통령. 사진제공=청와대
리얼미터 측은 “새누리당 지지율이 3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은 반면 새정치연합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출범 후 최고치로 올라섰다”며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격차 8.4%p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지명 후폭풍이 거셌던 지난해 6월 셋째 주(4.1%p) 이후 최저 격차로 좁혀졌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지지율까지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여권 전체에 대한 실망감으로 표출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새누리당 내에서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고참 당직자의 진단을 들어보자.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 여당 인기도 떨어진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다. 여당이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오히려 당 지지율이 올라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를 향해 할 말 다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여당의 모습을 불만스럽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새누리당 지지율이 주춤하는 상황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상황도 아니다. 여당 의원들이 친박계와 비박계로 나뉜 것처럼 여권 지지층 역시 친박층과 비박층으로 분절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정치권 출신을 일컬음)’인 청와대 행정관도 “대통령 지지층과 여당 지지층이 분리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며 “아직 그런 흐름이 뚜렷하다고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그런 전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의 인기가 추락하자 여권 지지층이 친노와 비노로 확연하게 나뉘었던 것을 사례로 들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지하지만 새누리당은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친박층), 새누리당은 지지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비박층)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친노·비노 지지층의 분절과 격렬한 대립이 당시 여당의 분당과 대선 참패, 이후 거듭된 이합집산으로 이어진 전례로 볼 때 친박·비박 지지층의 분열 역시 큰 화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게 여권 인사들을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다. 친박계 한 원외 중진급 인사의 지적이다.
“지지층이 둘로 나뉜다는 것은 곧 대통령과 여당 모두 힘이 빠진다는 의미다. 이는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한쪽이 힘을 갖고 정국을 끌고 가는 것보다도 못한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여당은 정책과 인사의 문제를 고리로 대통령을 흔들고, 대통령은 여당의 쇄신 요구를 무시하는 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권뿐 아니라 새누리당 정권이 중대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