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위기의식이 확산된 탓일까. 최근 여권 내부에선 열린우리당을 위기에서 구해줄 ‘영웅의 귀환’을 언급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재보선에 출마시켜 당을 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 전반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내년 4월에 있을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방 재보궐 선거에서 우리당이 참패한 것이 현재 민심을 반영한 것이며 내년에도 고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여권 내부의 비관적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상황 인식은 여권 내부에서 정 장관 ‘컴백’의 필요성을 거론케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정 장관이 입각할 때부터 ‘내년 전당대회나 재보선에 정 장관이 컴백해서 출마할 것’이란 예측은 나돌았다. 중요한 것은 정 장관이나 청와대 그리고 여권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인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그럴 여건이 조성될 확률이 제법 높은 편”이라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판결과 이번 지방 재보선 참패의 분위기가 내년 재보선까지 이어지면 자칫 ‘한 석도 못 건질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때문에 청와대가 여권의 ‘흥행카드’인 정 장관 차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 장관의 한 측근인사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조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까지 맡고 있는 정 장관이 정치권 컴백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할 때까진 장관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며 대통령이 조기에 그렇게 할 리도 만무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권 내부 상황이 정 장관의 발목을 그리 간단히 놓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제법 많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김근태 장관 캠프 내에서 당의장 도전 논의가 흘러나온 것이나 이해찬 총리가 대권 후보로서 약진하는 등 여권 내 무게중심이 ‘천·신·정’의 당권파 세력으로부터 재야파로 옮겨가고 있다.
친노 386 의원들도 ‘친 시장주의’노선을 표방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해온 당권파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고 전한다. 정 장관이 공격받기 십상인 정치권을 떠나 행정부에서의 ‘대권 수업’을 택했지만 그 사이 여권 내 역학구도가 정 장관이 장악력을 유지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근태 장관과의 신경전 끝에 통일부장관직에 입성했지만 그동안 노력한 것에 비해 결실이 적었다는 측면에서 정 장관의 정치권 조기 복귀 가능성을 높게 거론하는 시각도 있다.
장관 취임 이후 정 장관은 임동원 전 장관 등 대북문제에 정통한 인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과외지도’를 받았고 기존의 남북장관급 회담 내용들을 거의 외우다시피할 정도의 열의를 보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직에 오르면서 대미관계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추진이 사실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이라크 상황이 악화됐으며, 북한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해온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 등 주변 상황이 정 장관에 좋지 않다는 평이다. 즉, ‘잘해도 욕먹기 쉬운’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장관의 한 측근인사는 “미국이 새로운 장관(정동영) 길들이기 차원에서 협조 안해 준 점도 있었다. 미국 대선이 접전이었기 때문에 향후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점도 정 장관을 어렵게 했다. 그러나 부시의 재선 성공으로 더 위기감을 갖게 된 북한이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 어려워진 점도 고려해야한다. 부시의 재집권이 정 장관의 대북행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 전망했다.
정 장관이 지난 5일 고위 당정회의에서 “북한이 이제 변할 것”이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는 지적이다. 이 인사는 “장관직보다 정치권 복귀가 낫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 덧붙였다.
이 같은 정 장관측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여권 내부의 ‘정동영 차출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보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내년 3월 전당대회에 당의장 후보로 여러 인사들이 나서겠지만 전당대회를 흥행시킬 만한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전당대회보다는 오히려 다음달 치러질 재보선에 정국의 시선이 쏠릴 것이다. 만약 정 장관이 출마해 당선된다면 설령 여권의 유일한 당선자에 그친다 해도 야당이 가져갈 몇 석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야권의 여타 후보들의 당선소식은 정 장관의 ‘화려한 컴백’이라는 큰 뉴스에 가려질 것이며 이는 여권에 등을 돌린 민심을 추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친 정동영계’로 통하는 한 의원은 “기존의 이부영 의장이나 김근태 장관 같은 인물이 내년 3월 새 당의장에 선출된다 해도 바로 다음 달 치러지는 재보선에서 정 장관이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다면 정치권의 시선은 다시 정 장관쪽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야권의 공격을 다 받아내야 하는데 당 지도부보다 당내 최대계보 수장으로 군림하는 정 장관의 운신의 폭이 더 커지게 될 것도 분명하다”라고 밝혔다.
정 장관측 동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설은 정 장관 계보 의원들을 비롯해 여권 내부에서 전부터 논쟁거리가 돼 온 사안”이라 밝혔다. ‘친 정동영계’인사들 사이에서 정 장관의 재보선 출마에 대한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인사는 “지금은 미국·북한에 대한 외교전에도 심혈을 기울일 때”라며 “열린우리당 내부에도 재판이 진행중인 의원들이 있으며 재보선 출마 운운한다면 미리부터 그들 지역구를 노리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라며 경계했다.
그러나 여권의 또다른 관계자는 “당 지지도가 계속 바닥을 치고 내년 초 전당대회 흥행 여부가 불투명해질수록 정 장관을 향한 여권의 손짓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