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비리 의혹이 제기된 차기수상함구조함 통영함이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 정박해 있는 모습. 수상함구조함은 고장으로 움직일 수 없거나 좌초된 함정을 구조하고 침몰한 함정과 항공기 등을 탐색, 인양, 예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말기인 지난 2012년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군과 정치권 주변에서 돌고 있던 실세 A 씨 관련 소문에 주목했다. 내용인즉슨, A 씨 최측근이 정부에서 추진 중인 여러 무기 사업에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것이었다. 방산업계에서는 이미 A 씨를 통하면 쉽게 사업을 따낼 수 있다는 말이 퍼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친이계 의원은 “물론 (그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다. 무기 사업은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되는 분야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결정이 사업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MB 정부에서 A 씨가 이를 전담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돌았던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민정실은 즉각 확인 작업에 나섰다. 대형 무기 비리가 발생하면 정부에 치명상을 가져왔던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진위 규명은커녕 도마에 올랐던 실세로부터 핀잔만 들었다는 전언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사정기관 고위 인사는 “민정실이 대통령 친인척이나 정부 실세를 상대로 조사를 한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민정 직원들이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그때도 그랬다.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 와서 자신을 괴롭히느냐’는 식으로 나오니 좀처럼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다. 대대적인 방산 비리 수사에 나선 박근혜 정부 역시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종 타깃은 A 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내외 방산업체들에 고용된 로비스트 명단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끈다. MB 정부는 2020년까지 국방산업 및 무기 부문 세계 7대 수출국이 된다는 목표 아래 약 40조 원대 규모에 달하는 예산을 방위력 개선사업에 책정했다. 2012년에만 14조 원을 해외 무기 도입에 쏟아 부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계약을 따내려는 방산업체들 간 로비전 역시 치열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4대강·자원외교와 함께 방산 비리를 국정조사에 포함하자고 주장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지난 정부의 해외무기 도입 추진과정을 ‘복마전’으로 비유하며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규정지은 바 있다. 다음은 앞서 언급한 사정기관 고위 인사의 설명이다.
“방산업체에 고용된 로비스트들이 무기사업에 힘을 쓸 수 있는 정치권 인사들을 접촉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로비스트에게) A 씨가 집중 타깃이 됐던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 A 씨 대리인으로 통했던 측근 사업가가 만났던 로비스트들을 모두 확인했다. 일부는 (A 씨 측과의 접촉을) 인정했고, 나머지는 부인했다. 업계의 주요 로비스트들 명단이 만들어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무기 로비스트 현황을 파악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굴지의 방산업체들이 공공연히 로비스트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료를 만들어 윗선에 보고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명단이 당시 어떻게 활용됐고, 또 지금도 보관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선 알 수가 없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방산 비리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단장 김기동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도 이러한 내용을 접하고 로비스트 명단 확보에 나섰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로비스트 실체를 파악할 경우 지지부진한 방산 비리 수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합수단은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관련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 방위산업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한 정부합동수사단이 서울중앙지검에서 현판식을 하고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합수단 관계자는 “여러 채널을 통해 당시 민정실에서 만들었다는 로비스트 명단을 구하려 했다. 윗선에 보고가 된 것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자료 자체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면서 “언제인지 시점은 잘 모르겠지만 고의적으로 폐기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합수단은 로비스트 명단 ‘증발’과 방산 비리 비호 세력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명단이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는 누군가가 정부가 끝나기 전에 삭제했을 것이란 얘기다. 지난 정부에서 비리 정황이 뚜렷했던 여러 의혹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게 합수단 관계자들 생각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선 얼마 전 STX 측으로부터 수억 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정 전 총장 혐의를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처음 포착한 것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전 총장이 STX로부터 돈을 받은 시기가 2008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검찰 정예 조직인 중수부가 충분히 밝혀낼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중수부에서 대전지검으로 이첩되며 힘이 빠졌고, 그나마 방산 비리나 뇌물 수수 등은 빠지고 공금 횡령 부분만 기소가 됐을 뿐이다. 부실수사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합수단은 방산 비리에 전·현직 새누리당 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개입됐다는 정보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선 영남 지역 정치인들이 방산업체와 ‘각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국내 유수의 방산업체는 새누리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경남에 몰려있다.
한 무기 로비스트는 “일단 업체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에겐 무조건 접촉한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앞서의 합수단 관계자도 “우리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내사 정보들이 어떻게 방산업체로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정치권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방산 비리의 뿌리를 뽑고자 한다면 이러한 연결고리들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새누리당이 타격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방산 비리 수사는 검찰을 중심으로 한 합수단과 감사원이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다. ‘방산 비리는 이적행위’라는 기조 아래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고 있지만 아직 ‘대어급’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A 씨를 포함해 지난 정부 인사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기초 스케치를 그려둔 뒤 점점 큰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저인망식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결국 그 종착지는 지난 정부 주류였던 친이계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는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출간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는 친박과 친이 간 기류와 맞물리며 향후 정국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