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정보 문의한 시공사 이름 내걸고 계약자 모집…부지 확보도 않고 출자금 모아 ‘위험’
경기 수원에 홍보관을 둔 ‘병점역 서해그랑블 메종(화성시 송산동)’은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 유형으로, 10년간 전세 임대로 거주한 뒤 최초 입주 시 확정한 분양가에 우선 분양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 중이다. 향후 GTX-C노선 정차가 검토되고 있는 전철역(1호선)에서 가까운 데다 미래에 분양 전환 시 상당한 시세차익을 낼 수 있다는 문구로 온라인 등에서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일부 홍보 게시글은 ‘최대 3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예상된다’는 표현도 내걸었다. 이 아파트의 입주 보증금은 25평(전용59㎡) 기준 2억 원대 초반, 34평(전용84㎡) 기준 2억 원대 후반~3억 원이다.
아파트 이름에 ‘서해그랑블’이 들어가 있지만 해당 브랜드를 보유한 건설사 ‘㈜서해종합건설’은 최근 홈페이지에 공지에서 “당사는 ‘병점역 서해그랑블 메종’과 관련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며 유의할 것을 직접 당부했다. 가입자들은 지역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 관련 상황을 공유하고, 사기 의혹을 제기하며 계약금 환불 요구에 나섰다. 이들은 평형에 따라 2500만~3000만 원의 계약금(1차)을 냈거나 이보다 적은 가계약금을 내고 동‧호수 지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종합건설 관계자는 ‘일요신문i’에 “해당 사업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 추진위원회 측에 사업참여의향서를 보낸 적이 있는데 시행사가 이를 활용해 우리 브랜드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시행사와 시공 계약을 맺은 바 없고, 그럴 당위성도 없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시행사는 해당 부지의 토지 소유권도 다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키웠다. ‘토지주 일동’ 이름으로 내걸린 현지 현수막에는 ‘해당 토지를 절대 매매하지 않으며, 병점역 서해그랑블 메종 임대주택 분양과 절대 무관하다’고 써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주택 개발 예정 건이 있으면 토지 매매 상담 수요 때문에 일찌감치 분위기를 알 수밖에 없는데 해당 부지는 그런 기미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갑자기 대단지 임대아파트 개발 소식이 들려 황당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화성시청에는 해당 사업과 관련한 임대사업 신고나 주택을 짓기 위한 목적의 ‘지구단위계획 변경’ 신청이 접수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가입자들 입장에서는 홍보물에 기재된 시행사 ‘청담홀딩스’에 직접 문의 연락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별도의 공식 연락처가 공개되지 않아 각종 논란거리나 의문 사항들에 대해 홍보상담원들을 통해서만 문의가 가능하다. 복수의 상담원과 서해종합건설 관계자는 모두 시행사 관계자 연락처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한 상담원은 “현재 1차 계약자 모집(600명)을 완료하고 홍보관 운영을 중단한 상태”라며 “시행사 연락처는 모르며 분양대행사 정도만 연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시행사와 이름이 같은 복수의 다른 업체들에 문의 전화가 들어가 업무에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기민간임대주택 사업은 조합을 꾸리거나 회원을 모집해 출자금을 마련, 토지를 매입해 주택 건설에 나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협동조합형’ ‘회원모집형’ 등의 수식어가 주로 붙는다. 보통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100% 임대보증’ ‘1군(대형) 건설사 시공’ ‘하이엔드급(고급) 건축’ 등 표현을 내걸고 가입자를 끌어당기는 데 이 과정에서 허위‧과장 광고 소지가 많다.
시공을 맡을 것으로 홍보된 건설사가 알고 보면 당초 사업 기초정보를 얻기 위해 시행사에 ‘사업 참여 의향서’를 보낸 것이 전부거나 업무협약 정도만 체결하고 정식 시공계약은 맺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재 계약자를 모집 중인 화성시의 다른 민간임대아파트사업의 경우 일부 온라인(블로그) 홍보물에서 ‘동원건설산업’의 아파트 브랜드 ‘동원베네스트’가 사용되고 있지만 동원 측은 시행사와 시공계약을 체결한 바 없으며 사업참여의향서를 보낸 것이 전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부지 소유권 인수나 관련 인허가 승인이 안 된 상태에서 계약자를 모집해 자본금을 모으는 구조여서 불안성이 크지만 법제화된 기준‧절차가 없어 사업이 중단‧무산될 경우 계약금 전액 반환을 보장하기 어렵다. 횡령 위험에도 취약하다. 지난달 대구에서는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조합원 200여 명을 모집한 시행사 대표가 출자금 143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송치되는 일이 있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도시개발계획을 부각해 가입자를 현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최근 경기 광주시청은 한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자가 미확정 상태인 쌍령동 일원 도시개발사업계획을 활용해 조합원(출자금)을 모집하고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건설‧부동산소송전문인 방민현 변호사(수원 법률사무소 민현)는 “민간임대주택이 미래의 주택 소유권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는 우회 통로로 인식해 가입자들이 관심을 갖다가 허위‧과장 광고에 현혹될 가능성이 높다”며 “흔히 토지소유주 동의율 70~80%를 확보했다며 홍보하지만 실제 토지 매매 계약서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 여부를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변호사는 또 “사업을 벌인 시행사가 급조된 경우가 많아 설립 시점이나 운영 이력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도 있다”며 “시행사와 분양사, 분양대행사가 모두 다를 경우 문제 발생 시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리크스를 키울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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