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선 부사장은 차세대 재계 후계자 중 결단력이 가장 빠른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김 부사장은 본인이 이끌 그룹을 기존의 유통·식품에서 로봇과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으로 다변화한다는 목표다. 다만 문제는 자금력이다. 한화 신설법인은 물론, 한화그룹 자체가 재무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부사장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신규 사업을 펼쳐 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모펀드와 손잡은 적 있지만 지금은 중복상장 규제에 쉽지 않아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최근 김동선 부사장을 만났다는 관계자가 적지 않다. 최근 서울 여의도 63빌딩 내 집무실을 뺀 것으로 알려진 김 부사장은 신설법인 본사 사옥(순화빌딩) 외에도 서울 모처에 또 다른 집무실을 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 연 듯한 사무실에서 김동선 부사장을 만났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딜을 추진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은 최근 수년간 방산과 신재생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잘나가는 그룹으로 손꼽히지만, 현금 창출력이 높은 업종이 아니다 보니 자금 운용에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는 평가다. 주력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이 소액주주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한 배경이다. 그런 만큼 김동선 부사장이 이끌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와 휘하의 계열사들도 자금 여력은 충분하지 않다.
한화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신설법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는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작년 말 기준 1000억 원에 불과하다. 삼성증권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김동선 부사장이 이끌 계열사들이 총동원할 수 있는 현금 여력은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해 6000억 원 정도다.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는 출범하면서 4조 7000억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에, 어떻게 자금 조달을 해나갈지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휘하의 계열사들 합산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및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3500억 원에 불과해 대규모 외부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사모펀드(PE)들과의 협업이다. 김동선 부사장은 아워홈 인수 당시에도 PE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과 손을 잡은 바 있다. 우리은행에서 빌린 대출 2500억 원을 선순위로 깔고, 프로젝트 펀드와 블라인드 펀드 등을 동원해 중순위 2500억 원을 채웠다. 그리고 후순위 투자자로 한화호텔앤리조트가 나선 것인데, 투자자들에게 연 6~7%의 이자를 약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이미 한번 PE와 손잡고 딜을 마무리지은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도 PE와 함께 작업하길 희망하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중복상장 규제가 심해지면서 PE 자금 유치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만 하더라도 지주사는 물론, 주요 계열사가 모두 상장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유동화 현실적이지만 갤러리아는 재건축 예정
재계에서는 김 부사장이 한화갤러리아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부동산을 유동화하는 방안이 제일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본다. 한화갤러리아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갤러리아백화점 및 명품관을 보유하고 있다. 또 광교 갤러리아와 천안 센터시티, 진주점과 일부 부지를 갖고 있다. 한화갤러리아가 보유 중인 토지 및 건물 가치가 실거래가 기준으로 1조 5000억 원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한화갤러리아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년(2027년)부터 9000억 원을 투자해 명품관을 재건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은 유동화보다는 한화갤러리아 자체적으로 부동산 개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한화갤러리아는 부동산 디벨로퍼로의 체질 개선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신사동과 청담동, 서교동 등의 부동산 자산을 인수한 바 있는 한화갤러리아는 최근 서울 중구 순화빌딩을 2134억 원에, 강남구 신사동 개발 부지를 2367억 원에 인수했다. 순화빌딩은 그룹 사옥으로 쓰고, 강남구 신사동 개발 부지는 최고급 주거시설로 개발할 계획이다. 기존 백화점 VIP 고객 관리 경험을 살려 하이엔드 주거시설을 분양한다는 방침인데, 준공까지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갤러리아는 순화빌딩과 부지 매입 자금을 대부분 외부에서 조달했다. 송영진·이수민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대부분 외부 차입으로 자금 조달을 한다는 점, 부동산 매입가액 외 부대비용이 추가로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화갤러리아의 차입부담 증가 폭은 4000억 원을 상회할 것”이라며 “당장 회사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향후 개발 진행 과정 및 분양 추이 등에 대해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설비투자 2.1조, R&D에 2조 투자 계획…M&A에도 관심
한화갤러리아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부동산을 유동화해 계열사를 지원하기보다 직접 부동산 디벨로퍼로 나설 계획이라면, 최소한 당장은 계열사들이 직접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는 출범 당시 설비투자에 2조 1000억 원(명품관 재건축 제외 시 1조 2000억 원), 연구개발(R&D)에 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금 조달이 필요한 계열사 중 한 곳은 한화세미텍이다.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가 오랫동안 독점하던 SK하이닉스의 HBM용 TC 본더 공급을 성사시키면서 지난해 주목을 받았다.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도 R&D와 생산능력(CAPA) 확대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로보틱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화로보틱스는 2017년 국내 최초로 협동로봇 출시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매출이 110억 원으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화오션과 HD현대그룹 계열사, 삼성중공업 등 조선사에 용접 협동로봇을 공급한 이력이 있어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지난해까지 PE 대상으로 자금 조달을 추진했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기업공개(IPO·상장)를 전제로 투자 유치를 추진했었기에, 당장 투자 유치는 어려울 수 있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김동선 부사장은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는 산하에 카메라 분야의 강자인 한화비전을 갖고 있다. 한화비전, 한화세미텍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인공지능(AI) 비전 및 반도체 검사장비 분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인수 검토 대상으로 알려졌다. M&A에 쓰겠다고 밝힌 자금은 6000억 원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아직 인적 분할 전이라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journalist@ilyo.co.kr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