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들어온 2000억 원 DIP금융으로 당장의 운영자금은 마련했지만 회생계획을 끝까지 수행할 현금 여력은 넉넉하지 않다. 조사보고서상 공익채권은 총 1조 4117억 원이다. MBK·큐리어스의 기존 DIP금융 공제분 등 홈플러스가 직접 변제하지 않는 몫을 제외해도 변제 대상은 1조 1929억 원에 이른다. 보고서는 2027년 2월 말까지 예정된 지출을 마친 뒤 남을 현금을 58억 원으로 추정했다.
비용 부담도 대폭 낮추는 것을 전제로 했다. 삼일회계법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 4차 수정회생계획안은 인력을 약 1만 명에서 6700명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줄이는 것을 반영해 손익을 추정했다. 현재 인원의 약 3분의 1이 줄어드는 셈이다.
변제재원 확보에는 자산 처분과 추가 차입이 동원된다. 홈플러스는 2028년 2월까지 비핵심 자가점포 19곳을 매각하고 핵심 자가점포 4곳을 유동화해 약 1조 4192억 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남은 점포를 담보로 2030년 5918억 원, 2037년 9143억 원까지 추가로 빌린다. 자산 처분이 늦어지면 후속 차입과 채권 변제 일정도 함께 밀릴 수 있다.
홈플러스는 장기 변제계획을 이행하면서 인가 이후 회사 자체의 M&A(인수합병)도 추진한다. 김광일 홈플러스 관리인은 관계인집회에서 폐점점포 매각 이후 M&A를 추진해 채권 변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회생 전부터 적자를 내던 회사다. 2000억 원을 투입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며 “영업을 계속해도 이익을 내지 못하면 납품업체 대금과 비용 부담이 다시 쌓이는 악순환에 빠져 선순위 채권자 일부만 변제받고 회생이 엎어질 수 있다. 결국 영업을 정상화하면서 조속히 매각까지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고 말했다.
회생계획에 묶인 채권자들은 채권 성격에 따라 돈을 돌려받는 시점이 크게 갈린다. 메리츠금융그룹이 보유한 담보신탁채권은 원금과 회생절차 개시 전까지 발생한 이자를 9월 12일까지 전액 현금으로 갚는다. 점포 부동산을 신탁해 우선변제권을 확보한 선순위 채권도 2027년 2월부터 2028년 2월까지 전액 변제한다. 폐점점포 매각이 지연될 경우에만 일부 변제가 2030년 2월까지 늦춰진다.
반면 대여금·카드채권·상거래채권 등 일반 회생채권은 2032년 2월 원금의 7.7%를 시작으로 2037년 2월까지 나눠 받는다. 회생 과정에서 새로 들어온 2000억 원 DIP와 공익채권처럼 일반 회생채권보다 앞서 변제해야 할 채무가 늘면서 후순위 채권자들의 회수 시점은 더 뒤로 밀렸다.
이 가운데 전자단기사채(전단채) 투자자들은 관계인집회에서도 직접 나설 수 없었다. 손실을 떠안은 것은 투자자들이지만 법률상 회생채권자는 신용카드사이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증권사를 통해 투자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금액별로 의결권을 나눠 행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한·현대·롯데카드의 의결권은 전체 회생채권자 의결권의 19.09%로, 이 가운데 기권 53.2%, 찬성 28.8%, 반대 18.0%로 집계됐다.
이의환 홈플러스 물품구매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너무 후순위라서 큰 의미가 없다. 계획대로 몇 년 뒤부터 돈을 나눠 준다고 해도 그 사이 홈플러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두렵다”고 말했다.

회생계획의 성패가 부동산 처분에 크게 기대면서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먼저 매각된 우량점포의 가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홈플러스는 2016년 가좌·김포·김해·동대문·북수원점 5곳을 세일앤리스백 방식으로 6801억 원에 매각했다. 유경PSG자산운용은 2021년 이들 점포를 7250억 원에 다시 팔았다. 개별 부지의 토지가치는 더 큰 폭으로 올랐다. 김포점 개별공시지가는 2016년 ㎡당 168만 원에서 올해 224만 원으로 33.3%, 가좌점은 159만 원에서 219만 원으로 37.7%, 북수원점은 278만 원에서 380만 원으로 36.7% 상승했다.
홈플러스가 2016년 매각한 동대문점 부지에는 현재 지상 49층, 417가구 규모의 주거복합시설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대형마트 영업점으로 쓰이던 수도권 부지가 매각 이후 주거개발이 가능한 토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홈플러스가 회생재원 마련을 위해 새 원매자를 찾아야 하는 자가점포 19곳 중 12곳은 비수도권에 있다. 과거에는 개발 여지가 큰 수도권 점포까지 먼저 현금화하고, 정작 회생 국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수자를 찾기 까다로운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자산가치가 좋은 곳이 있어야 나중에 매각이 되는데 MBK파트너스가 잘 팔리는 수도권 핵심 점포를 먼저 팔아버렸다”며 “그 자산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회생 과정에서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억 원 DIP 보증을 결정한 시점도 MBK 책임론을 키웠다. 서울회생법원은 6월 23일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 등에 회생절차 폐지 여부에 대한 의견조회 공문을 보내고, 같은 달 30일까지 2000억 원 추가 자금조달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기한까지 방안이 마련되지 않자 법원은 7월 3일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당시 급여와 거래처 대금이 밀리면서 상품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자금난은 폐지 결정 뒤 더 악화돼 7월 13일에는 운영자금 고갈로 영업 중이던 67개 대형마트가 모두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김병주 MBK 회장이 2000억 원 전액 연대보증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회생절차 폐지 결정 13일 뒤인 7월 16일이었다. 법원이 자금조달 계획을 요구한 6월 23일부터는 23일이 지난 시점이다. 메리츠금융이 같은 날 DIP 지원을 승인하면서 법원은 7월 21일 폐지 결정을 취소했다. 67개 점포는 8월 13일에서야 정상 영업을 재개했다. 법원이 처음 2000억 원 조달을 요구했을 때 전액 보증을 확정했다면 회생절차 폐지와 전 점포 휴업까지 이어진 혼란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었던 만큼, MBK가 결정을 늦추며 자금난과 영업 차질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회에는 PEF 차입한도 축소와 내부통제·정보공개 의무 강화 등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앞서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유통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MBK도 영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보다 보유 부동산을 활용한 투자금 회수에 지나치게 기대왔다”며 “사업이 흔들려도 자산을 팔아 회수하면 된다는 판단이 결국 회생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홈플러스 사태로 PEF에 대한 시장의 신뢰까지 크게 훼손됐다”며 “문제를 만든 것은 MBK의 경영과 의사결정인데 지금은 PEF 업계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는 모양새다. MBK가 시장의 신뢰를 깎아놓고 다른 운용사들까지 규제 비용을 떠안게 했다는 불만이 업계에 크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