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무기는 글래머러스한 ‘육체’였다. 38-24-38의 빼어난 몸매는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놨을 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웨스트의 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향수 쇼킹과 코카콜라의 유리 용기
이 모든 것은 코르셋 모델이었던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 어릴 적부터 춤과 노래와 연극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14세 때 ‘어린 요부’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였고, 상체와 골반만 움직이며 묘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쉬미’(shimmy) 댄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직접 쓴 희곡으로 대흥행을 기록했던 영민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3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극계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해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재치 있으면서도 다소 외설적이며 솔직한 발언으로 시대의 섹스 아이콘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가장 먼저 영감을 받은 사람은 초현실주자 살바도르 달리였다. 가난한 예술가였던 그는 1936년 런던의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참석했을 때 에드워드 제임스라는 사람을 만난다. 시인이자 예술가들의 후원인이었던 제임스는 달리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1년 동안 그 어떤 작품을 만들더라도 자신이 모두 사겠다는 것.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집을 리모델링하던 중이었는데, 방 하나를 아예 예술품으로 꾸미려 했고, 달리에게 그 작업을 부탁했다. 당시 메이 웨스트에게 빠져 있던 달리는, 웨스트의 얼굴과 육체를 하나의 다양한 예술 콘셉트로 승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른바 메이 웨스트 립 소파(Mae West lips sofa)로 불리는 이 가구는 나무와 새틴을 재질로 한 것. 가로 183센티미터, 세로는 86.5센티미터, 높이 81.5센티미터의 자그마한 소파로 1938년에 총 다섯 개를 제작했다. 제임스는 이것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는데, 1984년에 세상에 떠나기 전에 브라이튼 아트 갤러리와 개인 소장가에게 두 점을 팔았고, 나머지 세 개의 소파는 여전히 에드워드 제임스 재단 소유물로 남아 있다. 한 명의 대중적 스타를 예술품으로 만든 건 앤디 워홀의 팝아트보다 훨씬 앞선 시도였다. 또한 달리는 ‘메이 웨스트의 얼굴’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녀의 얼굴과 아파트먼트의 이미지를 결합한 것. 스페인에 있는 달리 뮤지엄에 가면 이 그림을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 걸 볼 수 있는데, 벽에 걸린 두 점의 회화가 웨스트의 두 눈이 되었고 코 모양의 벽난로가 있으며, 메이 웨스트 립 소파 모양의 입술이 있다.
구명조끼 ‘메이 웨스트’와 립소파.
그러자 아예 메이 웨스트를 입은 생존자들의 모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골드피시 클럽’(Goldfish Club). 영국에서 구명 장비를 만드는 회사를 이끌던 C. A. 로버트슨이 1942년에 만든 것으로 ‘골드’는 생명의 중요성을, ‘피시’는 바다를 의미한다. 가입 조건은 전쟁 중 메이 웨스트를 입고 바다에서 목숨을 건진 군인들. 그들은 서로 만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더 좋은 구명 장비를 만드는 데 참고가 되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 회원은 9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메이 웨스트 커브’(Mae West curve)는 그래프에서 마치 깊은 가슴골과 같은 형상이 나타날 때 그 곡선을 지칭하는 말로, 역시 웨스트의 풍만한 가슴에서 온 표현. 하지만 메이 웨스트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건 아마도 콜라 병이 아닐까 싶다. 병이라고 할 때 실린더 모양의 밋밋한 형태가 주종을 이루던 시절, 코카콜라는 1915년에 곡선이 가미된 병에 콜라를 담기 시작한다. 이후 그 각도가 조금씩 조절되긴 했지만, 코카콜라 특유의 곡선미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유리 용기는 메이 웨스트의 각선미에서 온 것. 한편 웨스트의 의상을 만들었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1937년에 ‘쇼킹’(Shocking)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출시하면서 웨스트의 몸에서 영감을 얻어 향수 병을 만들기도 했는데, 당시로서는 진정 ‘쇼킹’한 디자인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