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열린 <2014 연예대상>의 시상자로 오른 개그맨 김준현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소속사 코코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 부문 대표로 있는 선배 개그맨 김준호가 실제 대표인 김 아무개 씨의 횡령 사건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한 일성이었다.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리면 비슷한 상황과 만날 수 있다. <2009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 후보였던 유재석은 MC를 보고 있던 신동엽에게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이런 곳에서 뵙네요”라고 말했다. 객석으로 내려와 이경규, 강호동, 유재석 등 대상 후보자들에게 “누가 대상을 탈 것 같냐”고 묻던 신동엽은 유재석의 엉뚱 발언에 당황해 했다. 이에 유재석은 “죄송해요. 당황하게 해서”라며 다시 “사장님은 누가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김준호(왼쪽)가 콘텐츠 부분 대표를 맡고 있는 코코엔터테인먼트는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신동엽은 과거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DY엔터테인먼트 경영에서 손을 뗀 바 있다.
당시 신동엽은 자신의 이름의 영문 약자를 딴 ‘DY엔터테인먼트’가 사면초가에 놓이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2005년 이 회사를 야심차게 차리며 유재석을 필두로 김용만, 이혁재, 노홍철 등 영입해 거대 MC 군단을 만들었지만 함께 일하던 이가 회사의 주식의 절반 이상을 다른 엔터테인먼트 자회사에 넘기면서 신동엽은 사실상 실권을 잃었고 경영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됐다. 그의 얼굴을 보고 DY엔터테인먼트에 참여했던 동료들에게는 면목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코코엔터테인먼트 사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이 회사는 김준호와 김대희 외에 김지민, 김준현, 이국주, 김원효 등 한국 개그계를 쥐락펴락하는 개그맨 40여 명이 소속된 회사다. 당연히 이들은 선배이자 리더 격인 김준호와 김대희를 믿고 이 회사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김 아무개 대표가 대규모 횡령 사태를 일으켰고 부채 규모가 50억 원에 육박해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연예인이 직접 매니지먼트를 맡았다는 것이다. 신동엽, 김준호 모두 동료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이들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단순히 친분만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무언가 다른 회사보다 그들에게 이로운 점이 있을 거란 판단을 했기 때문에 동료가 운영하지만 결국 신생 회사라는 약점을 감안하고 손을 잡은 것이다.
먼저 따져볼 건 ‘왜 연예인들은 기획사를 차리나?’다. 통상 신인 때는 활동하는 데 필요한 제반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회사와 연예인들이 5 대 5로 나눈다. 100을 벌었다고 했을 때, 매니저 인건비와 차량 유지비,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고용금액 등 40을 제한다면 회사와 당사자가 각각 30을 가져가는 것이다. 연간 1억 원을 번다면 3000만 원이 자기 몫인 셈이다. 물론 인기가 상승하면 연예인이 가져가는 비율이 높아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연예인은 생각한다. “나 혼자 하면 내가 100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정도 스타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면 ‘1인 기획사’를 만든다. 하지만 혼자서 매니저와 스태프 등을 고용하면 계약 단가가 올라간다. 또한 법인 설립 비용과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각종 물품 대금은 물론 세금까지 직접 계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모든 것을 직접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금 회사로 들어가는 것을 고민한다.
연예 매니지먼트 역시 ‘규모의 경제’라 할 수 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모였을 때 활동비용을 낮출 수 있고 회사의 운영 자금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법인을 만들고 뜻이 맞는 동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코코엔터테인먼트에 몸담았던 한 개그맨은 “개그맨들에게는 우리만의 세상과 룰이 있다. 개그맨이 직접 운영하면 이런 부분을 잘 이해해줄 수 있고,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을 거란 기대로 몸담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회사는 회사다.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그맨들이 개그는 잘하더라도 회사를 잘 운영할 거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 경영인이 연예계에 대해 잘 알고, 애정을 갖고 있다는 보장 역시 없다. 여기서 균열이 발생한다.
DY엔터테인먼트와 코코엔터테인먼트가 각각 설립됐을 때 겉으로 보기에 신동엽과 김준호가 대표였다. 때문에 화제를 모을 수 있었고 연예계 매니지먼트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신동엽이 가진 지분은 DY엔터테인먼트의 절반이 넘지 못했다.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김준호는 콘텐츠 부문의 대표일 뿐, 경영상 대표와 대주주는 따로 있었다.
회사는 콘텐츠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회사라는 테두리를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경제적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안에 담긴 콘텐츠 역시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DY엔터테인먼트는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된 신동엽이 빠지면서 일선 연예 기획사와 차별화가 사라졌고, 김준호는 수습 불가한 상태로 회사의 재정이 무너질 때까지 제대로 견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소수 지분을 가진 매니지먼트 부문 담당자로서 김준호가 대표의 횡령 사실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는 위치였을 것이다.
그들의 실질적 권리는 작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이 갖는 의무는 크다. 대중에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화살을 받고,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질 것을 강요받는다.
김준호는 코코엔터테인먼트 폐업의 당사자로 지목받았지만 그는 폐업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코코엔터테인먼트와 손잡은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개인 재산을 털어 밀린 출연료를 지급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돈 많은 일부 투자자들이 회사를 알리기 위해 유명 연예인들을 ‘얼굴 마담’, 혹은 ‘바지 사장’으로 앉히곤 한다”며 “하지만 투자자의 목적이 엔터테인먼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인지도를 활용해 다른 일을 벌이기 위함일 때가 많다”고 충고했다.
코코엔터테인먼트의 도주한 김 대표가 딱 그랬다. 개그맨들을 대거 영입한 후에는 요식사업 등에 손대며 자산을 깎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부채가 50억 원에 이르렀고,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김준호의 얼굴을 보고 투자했다”며 성토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는 A라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후, A의 CF모델을 하고 있는 B에게 ‘네 얼굴 보고 주식을 샀다’며 책임지라는 것과 비슷하다”며 “이렇듯 대중에게 알려진 연예인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무작정 관심을 갖고 신뢰를 보내는 사회적 풍토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