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정 다른 한나라 지난 18일 한나라당 운영위 참석자들의 다양한 표정. 왼쪽부터 원희룡 최고위원, 김덕룡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표, 정형근 중앙위의장.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 최고위원이 탈당해 중도개혁 성향 의원들과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반대로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 등 보수 인사들은 한나라당이 보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진짜 보수 신당 창당론’을 주장하고 있다. 현 정치 상황은 이래저래 한나라당 이념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어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대체적인 시각은 한나라당이 완전히 두 쪽 나기보다는 소장파와 보수파로 양분된 ‘당내 당’으로 분화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양측 갈등은 서로를 상대하기 꺼릴 정도로 확전되고 있지만 대안으로써 뚜렷한 안식처가 없는 상황에서 어느 쪽도 무작정 당을 뛰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벌어졌던 ‘친노파’와 ‘반노파’의 당내 당 싸움이 2004년 한나라당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평이다.
양측 갈등의 최대 변수는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과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이다. 국보법이 당의 이념성에 관한 문제라면, 박 대표의 리더십은 당의 향후 진로와 차기 대권 문제와 관련된 사안이다.
양측의 1차 싸움은 국보법 개정을 놓고 펼쳐질 전망이다. 당내 소장개혁파 모임은 지난 18일 국보법 개정의 핵심쟁점인 제 2조 ‘정부참칭’ 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표했다. 국보법 이름도 ‘민주질서기본수호법’을 개명했으며, 단순 찬양고무와 이적단체 표현물에 대한 처벌규정은 아예 삭제했다.
이에 대해 이방호 김용갑 의원 등 보수파 모임인 ‘자유포럼’은 “대한민국을 북한에 갖다 바치는 꼴”이라며 수용불가 방침을 천명했다. 이들은 소장파를 향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며 소장파들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자유모임은 ‘정부참칭’ 조항 삭제 불가, 잠입탈출, 고무·찬양죄 일부 수정 등 소폭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소장파도 ‘강 대 강’으로 맞서며 조직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진화 의원은 “총선 직후 나타났던 개혁과 변화의 모습은 완전히 실종됐다”며 “이제 본격적인 노선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소장파들은 수요모임을 주축으로 당내 개혁적인 초·재선 의원들과의 연대에 착수했다. 고 의원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고, 조만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파 한 의원은 “당이 수구꼴통화하면서 취약 계층인 2030 세대 등 젊은 층이 등을 돌리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간 100년 야당, 1000년 야당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합리적 보수’ ‘참보수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며 “보수파들이 2선으로 물러나야 당이 산다”고 일갈했다.
소장파들은 당의 정체성을 개혁적 중도보수로 설정하고, 대북관계, 한미동맹, 경제정책 등에 대한 진로수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반공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에 대한 통렬한 자아비판을 비롯, 불평등한 한미동맹 관계 개선,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에 대한 포용정책 등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같이 보수파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들이다.
특히 이 같은 소장파 움직임은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뉴라이트(New Right)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소장파들은 당의 ‘우향우’ 성향과 관련,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에 대해 비판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당 지도부가 보수파에 끌려 다니다 못해 보수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고진화 의원은 “우리가 박근혜-김덕룡 체제를 선택한 것은 개혁과 변화를 기대한 것인데, 지도부가 완전히 방향을 헛 짚고 있다”며 “지도부가 수구냉전적 사고를 용인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소장파들은 박 대표 체제의 우경화 조짐이 당내 차기 대권 경쟁의 조기 가시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 위헌 결정 이후 유력한 차기 후보 주자 중 한 명인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당내 세력이 결집되는 조짐을 보이자, 박 대표가 우경화 전략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소장파 한 의원은 “예상보다 일찍 차기 경쟁에 불이 붙었다”며 “차기 후보들이 당의 외연 확대보다는 당내 지지층 결집을 우선시할 경우 당의 왜소화를 초래해 정권 획득은 물건너 갈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파와 지도부는 최근 의원이 법안을 제출할 때 사전에 당 의총을 거치도록 당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심각한 신경전을 벌였다. 헌법기관인 의원 개인의 입법권을 당이 제약한다는 것이 소장파들의 주장이다. 한 의원은 “당이 소장파들의 손발을 아예 묶어 버리겠다는 전략”이라고 목청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