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지난해 9월 16일 대구시 수성구 희망로에서 택시운전기사 체험에 나선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김 대표와 김 전 지사 간 불화설이 돌기 시작했다. 문무합작에서 문무대전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김 전 지사가 제안한 일부 혁신안을 놓고 둘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김 전 지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안 중 상당수는 당내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축소됐거나 사라졌다. 한 친박계 의원은 “처음엔 의기투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 모두 대권을 노리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 배에 타긴 탔지만 애초에 속내는 달랐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김 전 지사로서는 아까운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혁신안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저평가 우량주’로 평가받던 김 전 지사가 단숨에 ‘대장주’로 급부상할 수도 있었던 까닭에서다. 이를 놓고 정치 전문가들은 김 전 지사의 당내 기반이 취약한 것과 연관을 짓는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김 전 지사는 대선주자임엔 분명하지만 내부에 계파라고 할 만한 세력이 없다. 김 전 지사 스스로도 혈혈단신이라고 말을 하곤 했다. 김 전 지사 혁신안이 제대로 빛을 못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김 전 지사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 전 지사 측 역시 이러한 지적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인다. 김 전 지사 측근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계파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대신 우리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취약한 당내 기반을 극복해낼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김 전 지사는 과거 노동운동을 하면서 조직을 꾸리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김 전 지사가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던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 조직 체계는 당시 노동계에서 무결점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아직 대선이 3년 남아 있기 때문에 밑바닥부터 조직을 잘 다져 나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선 김 전 지사 측은 사조직 ‘나라사랑’을 전국 단위로 확대, 재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 전 지사가 귀국하는 3월 3일 이후 구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TK 지역이 그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의 김 전 지사 측근은 “나라사랑 멤버들 중 몇몇은 이미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조직을 키워 대선 조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곧 TK에서 돛을 올릴 것”이라고 털어놨다.
TK는 김 전 지사가 태어난 고향(경북 영천)이기도 하다. 김 전 지사는 영천과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주로 수도권에서 정치 경력을 쌓아 TK 이미지가 약하다는 평가에 대해 김 전 지사는 “고향이 영천인데 경기도 사람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 앞으로 TK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김 전 지사는 지난해 혁신위원장 임명 후에도 대구를 가장 먼저 찾아 사흘 동안 택시를 직접 몰며 민심을 훑기도 했다. 정치적 고향 수도권이 아닌 TK에서 대권 행보의 첫 걸음을 뗐던 것이다.
특히 당내 기반이 취약한 김 전 지사로서는 TK에서의 입지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TK에서의 바람몰이에 성공할 경우 그 여파가 ‘김문수 대세론’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국 단위 사조직을 TK를 기반으로 꾸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노 전 대통령은 팬클럽 노사모를 주축으로 야권의 정치 중심지 광주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청와대에까지 입성했다. TK에 사조직을 만드는 김 전 지사가 노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지사가 2016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수성갑은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곳이다. 김 전 지사 출마가 현실화될 경우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과의 ‘빅매치’가 성사될 전망이다. 김부겸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이한구 의원을 상대로 40.3%의 득표율을 올려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대구지역 한 언론인은 “김 전 지사에겐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이한구 의원도 김 전 의원에게 고전했다. 다음엔 김부겸을 밀어주자는 말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김 전 지사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김 전 의원을 누르면 김 전 지사는 전국적 인지도를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TK 지역에서의 정치적 위상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김 전 지사가 TK 공략을 위한 계획 수립에 들어감에 따라 또 다른 잠룡들 발걸음 역시 빨라질 전망이다. 현재 여권 대선 주자들 중 지지율이 가장 높은 김무성 대표 측도 개인 팬클럽을 중심으로 세 확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김사모(김무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각 지역 단위 단체를 전국연합으로 합칠 예정이다. 이들은 2월 27일 대구의 한 호텔에서 대규모 모임을 연 것으로도 전해진다. 김 전 지사의 본격적인 TK 상륙을 앞두고 김 대표가 ‘맞불’을 놓은 셈이다. 향후 TK에서 김 대표와 김 전 지사 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 TK 차기 맹주 후보로 거론되는 최경환 부총리와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지역적 기반을 발판으로 언제든 대권주자로 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정치인들로 꼽힌다.
이러한 잠룡들 스탠스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선 못 마땅해 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박 대통령 임기가 이제 3년차에 접어든 상황에서 차기를 논하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 정치적 고향인 TK에서 말이다. 여권 핵심부는 대권 레이스의 조기 과열이 현직 대통령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권주자로서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하며 이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는 이 전 대통령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반대로 박 대통령 지지율은 올랐다. 박 대통령은 차기 주자들 목소리가 높아지면 자신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더군다나 지금 TK에서 거론되는 ‘포스트 박근혜’가 김무성·김문수 등 비박 일색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친박계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