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숙의 장희빈 연기는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 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연기자들에게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 ||
소문만 무성하던 KBS 100부작 사극 <장희빈>(가제)의 타이틀롤, 장희빈 역에 김혜수가 결정되면서 21세기 ‘ 새 장희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반상이 엄격하던 시절, 중인 신분임에도 임금의 사랑을 받아 후대에 왕이 될 왕자까지 낳고, 한 나라의 국모 자리에까지 오르고, 호사와 권력을 누리다가 폐위가 되고, 끝내는 사약을 받아 죽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 일생 자체가 드라마틱한 데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희로애락의 생애를 그 어떤 인물보다도 잘 보여줄 수 있어 장희빈은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좋은 소재 중 하나로 꼽혀왔다.
장희빈 역은 당대 톱스타들이 맡거나 이를 통해 톱스타로 급부상했기 때문에 배역 선정 자체가 늘 화제로 떠올랐다. 61년 영화 <장희빈>의 김지미, 68년 영화 <요화 장희빈>의 남정임, 71년 MBC <장희빈>의 윤여정, 82년 MBC <여인열전-장희빈> 이미숙, 88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인현왕후>의 전인화, 95년 SBS <장희빈>의 정선경 등이 장희빈의 계보를 이어왔다. KBS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71년 안방극장 최초의 장희빈 역을 맡은 윤여정은 신인이었다가 이 역할로 급부상했다. 그때도 <장희빈>의 인기는 대단해서 상궁 역을 맡은 연기자조차 길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들의 격려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 전인화(왼쪽) 정선경(오른쪽) | ||
최후를 맞아 사약을 안 먹으려고 계단을 데굴데굴 구르며 저주의 말을 퍼붓던 이미숙의 장희빈 연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 뇌리에 선명하다. 이번에 장희빈을 맡은 김혜수도 “이미숙의 연기에 반해 언젠가 꼭 장희빈 역을 하고 싶었다”고 했고, 먼저 제의를 받은 송윤아는 “이미숙의 장희빈 이후 나온 드라마는 다 실망스러웠고, 이미숙보다 더 잘할 자신 없다”며 출연을 고사했을 정도.
이미숙 다음으로 장희빈 역을 맡은 연기자는 전인화. 전인화는 장희빈 역을 맡기 전까지는 지고지순한 청순가련형 역할이 대부분이라 ‘과연 악역을?’이란 우려도 만만찮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표독스러운 연기로 좌중을 압도하여 일부의 우려를 종식시켰다. 장희빈 연기가 워낙 실감나서 전인화는 시장에 나가 물건을 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장희빈이다!”며 손가락질해서 외출조차 마음대로 못했다는 것.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장희빈>은 SBS의 95년작. 이전작과는 달리, 장희빈이 중전 자리를 탐낸 단순한 요부가 아니라 인현왕후와 함께 당시 정세에 따라 운명이 뒤바뀌는 여인임을 강조하려고 했다.
▲ 김혜수 | ||
KBS의 야심작이라 캐스팅이 확정되기도 전부터 화제였다. 장희빈 역으로 물망에 오른 여배우 중 심은하 이영애 김남주 김현주 송윤아 등 알려진 인물만 해도 10여 명, 거의 다 톱클래스의 연기자들이다. 그러나 막판에 극적으로 캐스팅된 김혜수는 사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목소리가 사극에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혜수는 “장희빈을 단순한 요부가 아닌 진보적이고 능동적인 의지의 여인으로 그릴 것이다.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는 만큼 전통 여성 이미지가 아닌 내가 적격”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과연 김혜수의 바람처럼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 장희빈이 탄생해 선배들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다.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