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애초 단순한 사기 고소사건을 수사하던 중 대규모 원정도박의 ‘꼬리’를 잡아 이중 현재까지 17명을 구속하고 24명을 지명수배한 상태. 주로 필리핀과 마카오 등지에서 원정도박을 벌인 이들 중에는 유명연예인 서너 명이 포함돼 있어 연예계는 이번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 관계자들을 통해 연예인들의 도박 실태와 이들을 연결하는 일명 ‘에이전트’들의 활동 상황을 추적해 봤다.
필리핀과 마카오 등지로 ‘관광차’ 혹은 ‘공연차’ 떠나는 연예인들 중 일부는 오로지 도박을 목적으로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현지의 호텔과 카지노를 연결해 주는 일명 ‘에이전트’를 통해 모든 필요한 절차를 해결한다. 호텔 예약이나 티켓팅 등은 물론 원하는 ‘부가서비스’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기업인 등 얼굴이 알려진 경우 특별고객으로 분류돼, VIP룸을 제공받는 것은 물론 철저한 비밀이 보장된다. VIP룸은 일반고객들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이들의 얼굴이 노출될 염려가 없다.
카지노 자격 ‘1만달러’
필리핀 마닐라의 H호텔의 경우 전체 고객 중 한국인이 25%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 S호텔과 또 다른 H호텔 역시 카지노를 갖추고 있어 관광객들이 주로 드나들고 있다.
현재 필리핀 등지의 호텔과 카지노에서 ‘영업’중인 ‘에이전트’는 40여 명 정도. 일명 ‘에이전트’란 관광객들을 모아 카지노에 ‘연결’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이번에 검찰에 적발된 에이전트 A씨(35)는 단골 고객이 있을 만큼 현지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다.
검찰에 따르면 A씨가 가지고 있던 메모장에 고객들의 이름과 이들이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금액 등이 적혀져 있으며, 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A씨와 같은 에이전트들은 적게는 십여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지 전담고객을 두고 철저하게 관리한다.
현지 공항에 내려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처럼 고객들에게 부대 비용을 전부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현지 카지노에서는 자격요건을 검증한다.
보통 ‘1만달러’를 예치금 명목으로 소유한 자만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설. 한 여행업 관계자는 “관광객들이 온통 도박에만 신경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받들어 모신다’”고 표현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에이전트가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현지 매춘부를 연결해 주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두세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유명연예인 B와 C의 경우 도박과 함께 섹스도 즐겨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이전트 양성 조직도
필리핀과 함께 마카오 역시 국내 관광객들에게 애용되는 원정도박 여행지다. 마카오에는 카지노가 설치된 호텔이 O, S, H호텔 등 대여섯 곳 정도로, 규모가 큰 L호텔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주된 고객인 한국인들을 위해 현지에서는 전담 한국인 에이전트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
이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집책들과 연계해 한국인들을 현지로 유인하는 작업을 조직적으로 행하고 있다. 한국 모집책들은 주로 강원랜드에서 만난 도박꾼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검찰 수사에 적발된 도박 피의자들 중 상당수 역시 강원랜드에서 바카라 도박을 처음 배운 뒤 카지노 도박에 빠진 사람들로 밝혀졌다.
주부 박아무개씨(31)의 경우, 강남의 한 여성전용 사우나에서 만난 해외 카지노 모집책에 유인돼 원정도박에 나섰다가 이혼까지 당한 케이스. 박씨는 4천여만원을 탕진하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뒤, 강원랜드에서 만난 도박꾼들을 해외카지노로 유인하는 모집책으로 활동해 왔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해외 카지노 도박꾼들을 국내로 유치해 외화유출을 막기 위해 설립된 강원랜드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반인 모집책에 비해 유명인들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들의 실체는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필리핀과 마카오 등지에는 이들을 전문으로 관리하고 교육시키는 업자가 따로 있을 정도로 조직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홍콩을 경유해 손님을 받는 마카오 등지에는 에이전트 외에 고객들의 신분보호만을 책임지는 이들이 따로 활동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필리핀과 마카오 등 현지 사정에 밝은 관계자를 통해 유명 연예인 수 명이 이곳의 카지노를 드나들었던 것을 확인했다. 앞서 언급한 개그맨 B의 경우 한두 달에 한 번씩 들어와 2∼3일 정도 머물다 갔는데, 한 번 다녀갈 때마다 보통 1만달러 정도의 돈을 쓰고 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종종 에이전트를 통해 소개받은 여성들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는 활동하지 않는 개그맨 D는 매달 이곳을 드나들 정도로 도박에 빠진 케이스. D는 5천달러 정도를 판돈으로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이밖에 탤런트 J와 가수 S 등도 정기적으로 필리핀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는데, S씨의 경우 도박으로 인해 수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다.
고위층 부름 받고 출국
뿐만 아니라, 여성그룹 E는 두세 차례 필리핀을 방문해 멤버 중 일부가 현지에서 국내 유명기업인과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확인돼 충격적이다. 이들은 도박을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라기보다는 고위층의 부름을 받고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한편, 검찰은 지난 11월25일 상습적으로 거액의 원정도박을 벌인 혐의로 연예인 2명을 출국금지했으며 이들 외에도 서너 명의 연예인들에 대해 수사중이다.
이에 대해 이중훈 부장검사는 “수사가 진행되는 결과에 따라 이들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연 이번 검찰 수사에서 도박연예인들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날지 두고볼 일이다. 한파처럼 닥친 원정도박 수사를 한국 연예인들은 물론 현지 업소 관계자들까지 웅크리고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