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주요 임무는 ‘분위기 조성’. 딱딱한 협상 테이블에 앉은 당사자들의 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와 웃음으로 풀어주어 결국 협상 성공의 윤활유 역할을 하라는 ‘특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협상 테이블에 불려가는 가장 대표적인 코미디언으로는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을 들 수 있다. 그는 지난 75년부터 최근까지 1천 번이 넘게 기업의 협상 테이블에 불려가 ‘특명’을 완수해 냈다고 한다.
불려간 코미디언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풀기 시작한다. 물론 협상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척하는 것이 기본. 기업 임원들은 대부분 남자들이 많기에 성인유머인 소위 ‘Y담’이 잘 먹힌다. 처음에는 ‘사람 죽일 듯한 인상’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재미있는 유머를 들으면서 서서히 얼굴이 풀어진다고.
그러다 좀 더 재미의 수위를 높여 가게 되면 정장 차림의 딱딱한 이미지를 가진 대기업의 고위직 임원들도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끊임없는 웃음에 넥타이며 허리띠를 풀어놓고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울면서 웃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되는 것. 이쯤 되면 당사자들은 처음에 품고 있던 공격성과 경계심을 ‘무장해제’하게 마련.
코미디언은 ‘적당한 분위기’라는 판단이 서면 슬슬 기업 간 분쟁의 핵심사안인 ‘알맹이’를 스쳐가듯 건드린다. 물론 ‘초빙’된 코미디언은 해당 기업쪽으로부터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협상의 주요 내용과 기업이 원하는 바를 주지시킨다는 것.
그 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즈음에 코미디언은 자리를 빠져나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기업 당사자들끼리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 이렇게 웃음으로 시작된 협상테이블은 거의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한다.
협상의 당사자가 정부와 기업 간일 때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건설부(현 건설교통부의 옛 명칭)와 각 건설업체 대표들이 만나는 협상 자리에 ‘전격 투입’돼 임무를 완수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난 90년대 한 협상 테이블에 건설부 관계자와 건설업체 사장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건설부는 건설업체들의 담합을 강력히 저지하기 위해, 건설업체들은 그런 정부를 상대로 실리를 따내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이씨는 이 모임에 참석해 무려 3시간을 떠들면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분위기는 자연히 우호적으로 변했고 협상 결과도 대성공이었다. 건설업체들은 담합을 포기했고 정부도 적정한 수준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다음날 정부 관계자로부터 이런 ‘치하’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협상 자리의 분위기를 위해 코미디언을 부르자’라는 이 기막힌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이씨는 이에 대해 “내 기억으로는 아마 지난 70년대 한 재벌 총수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한다. 평소에도 ‘뽀빠이 이상용’을 좋아했던 한 기업인이 절체절명의 협상을 앞두고 이러한 방법을 고안해냈다는 것.
대기업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사실 기업과 기업 간에는 경제논리로만 풀 수 없는 일이 있다. 또한 기업인들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한 번 싸움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때론 동석하는 코미디언이 협상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열쇄를 쥐게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준 대가는 어느 정도일까.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큰 돈’인 것만큼은 사실. 한 기업인은 ‘몇억원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맨입으로 해냈다’고 말했다는 것이 이상용씨의 전언. 협상테이블에 불려가면 초기 착수금에 이어 별도의 성공사례를 받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