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탤런트 출신 재벌가 며느리 고현정씨(32) |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강진 전철역 앞에 용산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 소속 경찰관 두 명과 도로교통안전공단(안전공단) 서울지부에서 나온 조사요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새벽 이곳에서 발생한 탤런트 출신 재벌가 며느리 고현정씨(32)의 3중 추돌 교통사고를 재조사하기 위해서 모인 것. 이 자리는 당시 고현정의 BMW X5 차량에 의해 추돌당한 영업용 택시기사 나아무개씨가 지난 3일 경찰 조사를 수긍할 수 없다며 안전공단에 재조사를 의뢰, 마련된 일종의 ‘현장 검증’이었다.
현재 고현정씨와 또 다른 피해자 권아무개씨는 합의에 이르렀으나 택시기사 나아무개씨는 사고 당시 고현정씨의 차의 속도를 문제 삼으며 강력히 맞서고 있는 상황. 이날 현장검증 결과에 따라 ‘고현정 3중 추돌 교통사고’는 소송에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용산경찰서측은 지난 2월 초 피해자인 나씨와 나씨의 택시에 추돌당한 또 다른 피해자 SM5 운전자 권아무개씨, 그리고 가해자인 고현정씨 세 명에게 속도 측정 조사에 응해달라는 요청을 각각 했다. 그러나 이날 현장에는 나씨만 나타났을 뿐 나머지 두 사람은 불참했다. 고현정씨는 자신의 비서를 대신 보냈고 권씨는 바로 전날 고씨가 가입한 보험사 삼성화재측과 합의를 해 나올 필요가 없었던 것.
나씨는 당시 사고 후 목과 허리에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나씨는 “이번 주 고려대병원으로 옮겨 정밀진단을 받고 여차하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보험사측에서 합의를 종용하고 있지만 그쪽이 제시하는 액수 1천5백만원은 합당치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나씨는 ‘사고 당시 속도가 시속 40km에 불과했다’는 고씨의 주장에 대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고씨는 경찰서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절대 과속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기온이 영하 상태였고 마침 눈까지 내리는 바람에 노면이 무척 미끄러웠다. 혼자 운전하다가 미끄러져 사고를 낸 것이다. 하지만 상해 사고를 일으킨 만큼 피해자들에게는 죄송할 따름이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나씨의 주장은 사뭇 달랐다. 그는 “당시 추돌당한 택시 뒷부분의 파손 정도와 사이드 브레이크까지 채운 상태에서 약 40여m 앞으로 밀린 점, 그리고 도로에 떨어진 파편 등으로 미뤄 볼 때 사고 당시 고씨 차의 속도는 최소, 시속 80km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고현정의 대리인 자격으로 현장에 온 A씨의 주장은 이런 나씨의 주장과 백팔십도 달랐다. 그는 조사 요원들에게 “BMW X5는 시속 40km 이상의 속도로 추돌 사고를 냈을 때 자동으로 에어백이 터지는데 사고 당시 에어백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며 나씨측이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 지난 2월18일 서울 용산 한강진 전철역 앞에서 경찰과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들이 ‘고현정 교통사고’에 대한 조 사를 벌이고 있다. | ||
교통사고 사건에서 사고 당시 가해자의 차량 속도는 ‘뜨거운 감자’로 작용한다. 시속 60km를 규정 속도라고 했을 때 이보다 시속 20km 이상 과속했을 경우는 ‘10대 중과실 사고’(중앙선 침범과 무면허, 또는 음주 운전 등)에 해당돼 가해자가 기소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과속했다고 하더라도 사망 사고가 아닌 이상은 벌금형에 그치는 게 관례. 또한 보험금 합의도 이와는 별개로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이날 현장에는 타이어가 밀린 지점을 알 수 있는 스키드 마크(급정거 타이어 자국)가 모두 없어진 상태라 피해자 및 가해자의 진술과 사고 발생시 정황 등을 단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안전공단 조사요원들은 양쪽의 입장을 토대로 1차 추돌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과 파편이 발견된 곳 등을 스프레이로 일일이 표시하며 사진 촬영, 한 시간가량 꼼꼼하게 조사를 벌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사요원은 “양쪽에서 1차 추돌 지점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고 직후 출동한 북한남파출소 경찰관에 의해 최종적으로 차가 밀린 지점은 확인됐지만 처음 부딪친 지점에 대해선 서로 상이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이것이 이번 사고를 푸는 열쇠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고현정씨 대리인의 주장과 달리 나씨는 최종 사고 지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40m 전방 도로가 1차 추돌 지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용산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의 한 경찰관은 “택시기사의 진술이 그동안 몇 차례 번복됐다”고 전제한 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씨가 자신의 차량이 밀린 최종 지점에 대해 처음에는 실제보다 10m 더 간 전방이라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착각했던 것 같다’며 이를 번복했다”고 말했다.
또 사고 발생 30분 후에 나씨가 촬영했다는 현장 사진도 의문스럽다는 게 이 경찰관의 시각. 당시 사고 시간은 새벽 4시40분께. 나씨 주장처럼 사고 발생 30분 후에 현장 사진을 찍었다면 아직 동트기 전일 텐데 그가 제출한 사진은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은 일출 이후 촬영된 사진이었다.
반면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나씨는 “당시 사고 직후였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 오락가락했을 뿐”이라며 “고현정씨의 차 속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안전공단 조사요원들은 속도 측정 등 현장 재조사를 모두 끝낸 뒤 나씨를 면담, 새로운 진술서를 받았다. 조사요원들은 이날 벌인 각종 조사를 토대로 의견서를 작성해 한 달 뒤 용산경찰서로 ‘의견서’를 보내게 된다. 대부분 이 의견서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가 원만한 합의를 보게 되지만 만일 피해자가 여전히 수긍하지 못할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안전공단의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 만약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경우 고현정씨가 법정소송에 휘말리게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범석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