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당 출신의 김원웅, 유시민 의원(왼쪽부터). | ||
열린우리당 전체가 지도부를 향해 인책론을 제기하고 지도부가 ‘용퇴’를 결심하게끔 만든 가장 큰 동력으로 당 안팎에선 개혁당그룹 인사들의 영향력을 꼽고 있다. 개혁당그룹 중진 김원웅 의원은 지난 12월30일 몇몇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당 지도부가 한나라당과 이상한 협상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과반수 이상 의석을 가지고 있을 때 개혁을 해야지 한나라당 눈치 보느라 당의 정체성을 파괴하면서까지 벌이는 협상결과에 순응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이는 개혁당그룹 전체 정서를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천정배 전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 마라톤 협상을 통해 얻어낸 합의각서를 들고 나왔지만 다수 강경파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합의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인사는 “한나라당과 국보법 협상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었던 김원웅 유시민 등 개혁당그룹 출신 의원들에 이어 여러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당 지도부를 성토하고 나섰다”고 밝혔다.
개혁당그룹 출신 의원들로는 김원웅 유시민 박명광 의원 정도가 고작이지만 이들의 실제 위력은 다른 계파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의원총회에서 소수 개혁당파 의원들이 전체 의견을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당 관계자들은 “개혁당그룹이 가진 조직력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을 내리고 있다. 개혁당파 소속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당내 기간당원의 수는 약 전체의 3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김원웅 의원은 “이제 열린우리당은 당권파와 개혁당파 양대 산맥 대결 양상이다. 천·신·정 당권파가 기간당원 수를 줄이려 노력했던 것도 전당대회 득표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는 기간당원 수에서 우리(개혁당파)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김 의원은 “당내 계파 중에 개혁당파만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도 없다”라며 표몰이 가능성을 내비쳤다. 즉, 오는 4월2일 1인2표제로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30% 투표인단을 확실하게 쥐고 있는 개혁당그룹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것이란 자가진단인 셈이다.
개혁당그룹에 대한 당권파의 견제는 열린우리당 창당 초기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권파가 주도했던 총선 후보 공천과정에서 개혁당 출신의 일부 유력주자들이 탈락하거나 비례대표 상위순번에서 밀려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선 승리 이후 설악산 워크숍에서 정동영 당시 당의장이 ‘실용주의’ 발언을 해 개혁당그룹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당권파는 전당대회 투표인단이 되는 기간당원 숫자를 조절하려다 개혁당파 인사들의 조직적 반발에 의해 저지당했다. 이번 국보법 처리과정에서도 ‘국보법 연내 폐지’라는 ‘명분’보다 ‘실리’차원에서 한나라당과 절충하고자 했던 당권파에게 개혁당파가 확실하게 ‘뒷다리’를 건 셈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개혁당그룹의 의원 수는 몇 명 안된다. 그러나 원내대표 선출(의원총회에서 결정)을 제외하고는 당의장 선출이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모두 당원 투표로 진행한다. 의원 수 많은 것보다 확보 가능한 기간당원 숫자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라 밝힌다. 즉, 30% 가량의 당원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개혁당그룹의 입지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
여당 내 중진들이 이부영 의장을 비롯한 상임중앙위원단의 사의 표명을 극구 만류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해온 현 지도부가 지금 물러나게 되면 이는 개혁당그룹의 행보에 비단길을 깔아주는 것이나 같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
현재 개혁당그룹 내에선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파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시나리오를 구상중이다. 1인2표제 투표라는 점을 활용해 재야파와 손을 잡고 개혁당파와 재야파 소속 당원들이 각 계파에 1표씩을 몰아줘 당권파를 고사시키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개혁당그룹 내부에선 김원웅 의원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이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중이다. 유시민 의원은 경기도지사 출마 준비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벌써부터 여의도 모처에 있는 개혁당그룹 인사들의 연구소 사무실에 당내 여러 인사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개혁당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훗날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정치 경력이나 행정 경험이 일천한 개혁당그룹의 수적 우세 논리에 당이 휘청거리는 것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혁당파 인사들 중 국민여론을 이끌 만한 리더감이 없다는 점도 개혁당그룹의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