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여고괴담>의 무엇이 관객을 불러모았는가? 이듬해인 99년 겨울, 전편의 후광을 등에 업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했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메멘토 모리>가 흥행에서 미끄러지자 의문은 더욱 커졌다. 역시 공포영화는 여름에 개봉해야 제격인가?
그로부터 5년 뒤인 2003년 여름 <여고괴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인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제작사 ‘씨네2000’은 앞선 두 편의 명암에도 불구하고 흥행 예측이 대단히 낙관적이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개봉일이 여름이라서만은 아니다. 바로 5년 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국내 경기 침체를 공포 영화 <여고괴담>의 가장 큰 흥행 청신호로 보고 있는 것. 과연, IMF 외환위기가 극에 달했던 98년 여름 개봉했던 <여고괴담> 첫번째 이야기와 달리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개봉한 99년 겨울은 생산과 소비가 모두 안정되면서 외환위기 이후 가장 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말하자면, 공포영화 <여고괴담>은 ‘불황괴담‘이었다는 얘기다.
흔히 여성의 치마 길이는 경기 흐름을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공포영화 역시 경기 흐름을 반영하는 게 사실인가?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인 99년 미국 경기가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지며 하강 국면을 맞기 시작했을 때 그 해 여름 극장가를 장식한 영화는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더 헌팅> 그리고 <식스 센스> 등 세 편의 공포물이었다.
2000년 미국 경기가 이른바 ‘더블 딥’, 이중 침체라는 불황에 빠져들며 휘청거리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해 상반기 극장가를 휩쓴 것은 <스크림3>였으며, <미션 임파서블2>와
최근 동반 경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일본과 홍콩,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하나같이 공포물이 흥행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례다. 장기 불황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듯 보이는 일본에서는 얼마 전 엽기 공포물 <주온>이 폭발적인 흥행을 했으며, <주온>은 최근 홍콩 영화계까지 접수했다. 최근 개봉해 파죽지세의 흥행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의 <장화, 홍련> 역시 최근의 극심한 경기 침체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공포물과 경기 침체의 상호 관계를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가 침체되면 사람들은 위로받기를 원한다. 영화는 그런 관객들에게 각성제다. 게다가 영화가 주는 자극 중에서도 끔찍한 공포나 섹스, 폭력은 가장 손쉬운 각성제 아닌가? 공포물에는 이 모든 게 있다.”
사실, 할리우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경기의 흐름에 따라 공포물을 적절하게 제작해 돈을 벌었다. 바꿔 말하자면, 영악한 영화 제작자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경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충무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2000년 여름 불었던 때아닌 충무로 공포영화 붐은 98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기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느릴 것이라는 예측에서 나온 것이었다. 2000년 당시 개봉했던 <하피> <찍히면 죽는다> <가위> <해변으로 가다> <공포택시> 등은 그러나, <가위>를 제외하면 흥행에서 하나같이 참패했다. 흐름을 잘못 읽었던 것이다. 2000년 여름 국내 경기는 IMF 이후 회복세의 정점에 이르렀다. 외환보유고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카드의 남발로 소비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올해 초부터 충무로에는 이미 여러 편의 공포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필두로 전지현 주연의 <4인용 식탁>, 유지태 주연의 <거울속으로>, 원조 <여고괴담>을 연출했던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등 수 편에 이른다. 우스갯소리지만, 경기 회복을 바란다면 이들 영화들의 흥행 실패를 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형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