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탑방 고양이> | ||
분명 상종가를 치고 있는 <옥탑방 고양이>를 스크린으로 옮겨와 젊은이들 사이의 최신 트렌드인 동거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나, 그 주인공을 김래원이 맡는다는 것은 영화 제작자로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다. 사실, ‘통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옥탑방 고양이>의 영화화 계획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오래 전부터 추진돼 왔던 일이다. 일찌감치 통신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확보한 충무로 L영화사는 그 이후로 줄곧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었다. 올해 초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대박 이후 통신 소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나리오 작업에 박차를 가했던 L영화사는 이미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전개의 영화 <옥탑방 고양이>의 시나리오를 탈고한 상태다.
사실 ‘동거’는 충무로에서는 새삼스러운 소재가 아니다. 남녀관계는 늘 임신과 배신, 비극으로 끝나버리던 70∼8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가 지나간 뒤 영화는 연애관계를 그리는 데 꽤 빠른 발전을 보였다. 미혼 여성이 낯선 남자의 침실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스크린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반부터. 동거는 그러한 영화 속 성 개방의 관문이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은 96년 작 <지독한 사랑>에서 중견배우 김갑수와 강수연이 육체적인 관계로 시작해 결국 서로 미워하고 헤어지게 되는 ‘동거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그럼에도 ‘충무로’가 <옥탑방 고양이>와 같은 동거 아이템을 서둘러 제작하지 못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더욱 개방된 젊은이들의 성 개념은 오히려 영화로 하여금 멜로풍의 사랑 얘기를 꺼리게 만들었다. J영화사의 마케팅 실장은 “성적인 자극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영화가 무슨 더한 자극을 줄 수 있었겠냐”며 “최근 충무로가 조폭 영화에 집착했던 것도 다 같은 이유”라고 지적한다.
▲ 사진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싱글즈> | ||
봉만대 감독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과 <싱글즈>가 제작에 들어갔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서로의 몸에 반해 동거를 시작한 한 커플이 결국 서로에게 식상한다는 솔직하지만 조금은 마음 아픈 에로물이었다면, <싱글즈>는 동거와 섹스, 결혼과 사랑에 대해 솔직하지만 조금은 화려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쿨한 농담이었다. 결과적으로 <싱글즈>는 대박을 쳤고,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역시 열혈 마니아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싱글즈>,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각기 드라마와 영화라는 태생적인 차이에서 오는 동거에 대한 큰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 그 차이는 남녀의 동거라는 것이 결국 살과 살이 부딪히는 육체 관계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된다.
L영화사가 탈고한 영화 <옥탑방 고양이>의 시나리오는 드라마와는 크게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 소설 <옥탑방 고양이>의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생활인에서 고시 합격생으로 ‘변신’했던 것처럼, 영화에서는 드라마가 얼렁뚱땅 넘어갔던 섹스와 복잡한 남녀 사이의 감정 관계, 좀 더 적나라한 대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김래원이 영화 <옥탑방 고양이>에서도 ‘고양이’ 역을 맡게 된다면, 관객들은 그의 운동복 대신 삼각 팬티를 더 많이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런 게 진짜 동거니까 말이다.
지형태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