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보 회장
이 자리에서 대부업계는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는 공익광고를 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광고 내용은 자신의 상환능력을 감안해 무리한 대출을 받지 말도록 조언하는 것과 보이스 피싱, 대출사기 등으로 이어지는 불법사금융을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담기로 했다. 광고에 필요한 비용은 아프로파이낸셜대부, 미즈사랑대부, 산와대부, 리드코프 등 8개 대부업체와 협회가 분담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부업계에 따르면 이 공익광고는 촬영까지 마친 상태로, 최근까지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협회는 빠르면 4월 초순부터 케이블방송을 중심으로 이 광고를 선보이고, 2편 이상의 시리즈로 만든다는 계획까지 잡아뒀다.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은 유명 배우 등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부업계는 스타급 연예인을 원했지만 캐스팅이 여의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광고 시작을 목전에 둔 지난 3월 말, 대부협회는 이 계획을 전격 보류했다. 대부업이 공익광고를 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접 마케팅”이라는 여론의 화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부협회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반감이 이렇게 뿌리깊은 줄은 몰랐다”면서 “광고를 냈다가 오히려 욕을 먹는 역효과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잠정보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 공익광고가 임승보 대부협회장이 취임 후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었고, 회원사들이 비용까지 부담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대부협회 전무를 거쳐 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임 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이 몸담았던 금감원과 손을 잡는 방안을 추진했다.
임 회장은 금감원에 공익광고를 공동으로 내보내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사기 방지 등과 관련한 광고 캠페인에 대부협회와 금감원이 이름과 로고를 공동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대부업체 광고에 감독당국의 명칭과 로고가 사용된다는 점을 떨떠름하게 여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대부금융협회 홈페이지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광고 내용이 뭐가 됐건 대부협회와 금융감독원의 이름과 로고가 나란히 나오는 장면을 곱게 봐줄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행여 대부업 쪽에서 사고라도 터지면 함께 비난받을 것이 뻔한데 보수적인 금감원이 모험을 할 리가 없다”고 전했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대부업체들의 기존 광고까지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여서 임 회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발표한 새해 업무계획에 대부업계의 허위·과장 광고를 규제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금융위는 업무계획 발표 이후 실제로 대부업 광고를 규제하는 법률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까지 해둔 상태다. 아직은 본회의 상정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법적 규제를 최소화하고 협회 중심의 자율규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던 임 회장은 난처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임 회장의 애를 태우는 상황은 또 있다. 대부업 감독기관이 금융위원회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현행 대부업법상 대부업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은 일부 대부업체들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거나 규제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주무기관인 지자체 역시 업무가 여러 부서에 나눠져 있고 인력도 부족해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TV만 틀었다하면 대부업 광고가 넘쳐나고 불법 사금융이 판을 치는데도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곧 바뀔 전망이다. 대부업 감독기관을 기존 지방자치단체에서 금융위원회로 바꾸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부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업체들 입장에서는 대부업을 향한 시선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데다 막강한 권한과 전문 인력을 갖춘 금융당국의 본격 개입이 그리 달갑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업종을 불문하고 당국의 첫 번째 원칙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것”이라면서 “대부업 광고가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어긋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규제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야심차게 추진하던 공익광고는 좌초하고, 힘을 보태줄 것으로 생각했던 금융당국이 예상 밖의 태도를 보이면서 임승보 회장은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금감원 출신인 임 회장이 감독당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대부업체들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부업계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과 공동명의로 광고를 낸다기에 큰 기대를 걸었던 대부업체들이 많다”면서 “(공익광고 실패로) 결국 회원사 호주머니에서 나온 예산만 낭비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임 회장은 공익광고 실패 후 이번에는 대부업의 명칭을 변경하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해둔 상태다. ‘대부업’ 대신 ‘소비자금융’이나 ‘생활금융’ 등 긍정적인 이름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회와 금융당국 등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이 작업이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성공한다면 대부업계의 숙원인 이미지 쇄신을 이룬 공을 인정받겠지만, 이마저 실패한다면 발밑이 패어드는 형국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