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화,홍련>에 자매로 출연했던 임수정(왼쪽), 문근영의 물장구 놀이 장면은 너무 예쁘게 나와, 영화 전체 분위 기를 위해 삭제됐다. | ||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한 편의 영화를 이루는 수만 컷의 필름과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감독이나 제작진들로선 자식처럼 소중하다. 그렇지만 편집 작업 후에도 갖가지 이유로 상영 직전에 잘려나가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영화 장면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삭제되는 데는 ‘관객의 수준에 맞추려다 보니’, ‘상영시간의 문제 때문에’, ‘스토리 전개가 여의치 않아서’… 등등 이유도 가지가지. 이 때문에 편집되고 잘려나가는 영화장면들은 감독이나 배우 모두에게 마치 ‘살이 도려지는’ 아픔이라고 한다.
물론 ‘막판 자르기’로 영화가 사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수도 적지 않다. 몇몇 사례를 살펴보자.
최근 흥행작 <장화, 홍련>은 모니터 시사회 때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예상보다 평이 안 좋다 보니 김지운 감독과 제작진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리고 개봉을 코앞에 두고 발빠르게 재편집에 들어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토리 전개가 어색하고 어려운 부분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들어낸 것. 때로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명쾌한 여백의 미가 ‘작품’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는 법이다.
한 영화 칼럼니스트는 <장화, 홍련>에 대해 “편집이 영화를 살린 경우”라는 평을 했을 정도. 제작에 참여한 김영 PD는 “사실 아까운 장면들이 많다”며 몇 장면을 소개했다.
먼저 수미(임수정 분)가 엄마의 유품을 살피는 장면에서 ‘달그락’ 소리와 함께 캐비닛 서랍에서 쥐가 ‘우르르∼’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면은 음향작업까지 완벽하게 마친 상태에서 전체적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들어내졌다. 서서히 ‘스며드는’ 공포 분위기를 원했던 감독과 제작진이 과감히 삭제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
또 다른 신으로는 수미와 수연(문근영 분) 자매가 욕실 안에서 물장구를 치는 장면이다. ‘안타깝게도’ 삭제 이유가 ‘너무 예쁘게 찍혀서’라고. 공포스런 분위기와 동떨어져 보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 PD는 “예쁘게 찍힌 장면을 빼려니 두 여배우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행히 10월께 출시되는 DVD에는 이 같은 삭제장면들이 모두 포함된다고.
▲ <선생 김봉두>의 졸업식 장면(위), <취화선>의 정사 장면 등도 아쉽게 편집됐다. | ||
촌지만을 밝혀서 ‘봉투 선생’으로 낙인 찍혔던 김봉두 선생(차승원 분)과 정이 든 시골학교 아이들의 졸업식 장면. 졸업식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울음을 터뜨리고 객석에서도 여기저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헌데, 졸업식 노래가 3절까지 이어지자 터졌던 눈물이 그만 마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1절만으로 끝내는 것이 감동을 최대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 개진되었고, 제작진은 과감히 2절과 3절을 삭제했다. 완성도와 대중적 코드를 모두 고려한 적절한 판단이었다. <선생 김봉두> 역시 흥행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밖에 장면이 뒤늦게 삭제된 후 배우들의 비중이 달라지는 일도 많다. <품행제로>의 경우 류승범의 코믹연기가 당초 계획보다 많아진 사례. 자연스레 함께 출연한 공효진과 임은경의 분량은 상당부분 재편집될 수밖에 없었다. 간혹 이런 이유로 시나리오에 묘사된 캐릭터만을 보고 출연한 배우들이 뒤늦게 당황하기도 하는데, <클래식>은 조승우의 분량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출연신이 삭제된 조인성의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전해졌다.
봉만대 감독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마니아팬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애초 시사회 때의 반응은 다소 난해하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두 남녀의 섹스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일부 평이 있었던 것. 이후 재편집 과정을 통해 영화는 좀더 매끄러워질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청해 받은’ 등급심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화를 잘라낸 경우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애초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개봉됐던 <취화선>은 독특하게도 ‘관객층을 넓혀 청소년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는 팬들의 성화 때문에 재편집된 경우다.
당시 임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감독에게 자식과도 같은 필름을 잘라내는 일은 정말 내 손가락을 자르는 일만큼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지만 “한국화의 멋을 청소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이때 삭제된 부분은 최민식(장승업 역)과 유호정(매향 역)의 정사장면과 기생과의 동침 중 동학농민들이 들이닥치는 장면으로 약 2분 가량이다.
이처럼 ‘이유 있는’ 편집은 필요불가결한 부분이겠지만, 외화의 경우 무분별한 삭제가 이뤄지는 일이 다반사다. 이는 대부분 상영횟수를 늘리기 위한 극장측의 입장이 반영된 것.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은 이에 대해 “외화의 경우 러닝타임이 무려 반 가까이 줄어드는 경우까지 있다”며 “이는 ‘편집’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