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간 전파 가능한 ‘안데스 변종’ 집단감염 비상…WHO “위험도 낮지만 추가 확진 가능성” 긴장감 고조
[일요신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타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남극 탐사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 사태가 주목을 받으면서 ‘또 다른 팬데믹이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를 출발해 카보베르데로 향하던 네덜란드 국적의 탐험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 안에서 감염자가 발생한 건 지난 4월 6일이었다. 첫 번째 감염자였던 남성은 발병 5일 만인 11일 선내에서 사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설명에 따르면, 이 남성은 탑승 전 이미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 감염 사태의 핵심은 크루즈 안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확인된 ‘안데스 바이러스 변종’이라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코로나19처럼 빠르게 퍼지는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긴장해야 한다”고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5월 12일 기준, 한타바이러스 확진자는 두 명 더 늘어나 총 일곱 명이 된 상태다.
한타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한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가 5월 11일 스페인 테네리페 섬에 정박해 있다. 사진=EPA/연합뉴스지난 4월 1일, 승객과 승무원 147명을 태운 ‘MV 혼디우스’호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땅끝마을인 우수아이아를 출발해 6주간의 기나긴 항해를 시작했다. 출발 당시만 해도 승객들은 남극과 남대서양의 장엄한 풍경, 펭귄 군락과 외딴 섬 탐험을 기대하며 들뜬 마음이었다.
실제 승객들은 사우스조지아섬과 군도들을 돌며 킹펭귄, 알바트로스, 물개 등을 관찰했고, 미국인 승객 제이크 로즈마린은 AP통신 인터뷰에서 “30만~50만 마리 규모의 킹펭귄 군락을 봤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며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항해가 이어질수록 선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및 폐렴 환자들이 늘어났다. 일부는 고열과 함께 기침, 복통을 호소했고, 몇몇은 급격한 호흡곤란으로 상태가 점점 악화됐다. 처음에는 이런 증상들을 단순한 풍토병이나 독감으로 치부했다.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첫 번째 사망자는 4월 중순경 나왔다. 네덜란드 국적의 한 70세 남성이 승선 5일 만에 발열과 두통, 경미한 설사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5일 후에 사망했고, 이어서 독일인 여성 역시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먼저 사망한 네덜란드 남성의 아내 역시 요하네스버그로 이송되던 중 공항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당시 이 여성은 네덜란드행 KLM 항공기로 갈아탈 예정이었지만 승무원들이 상태가 너무 위중하다고 판단해 탑승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사망자였던 남성이 안데스형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 확진자인 네덜란드 국적의 부부는 승선 전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지를 돌며 조류 관찰 여행을 했다. 부부가 방문한 장소에는 한타바이러스를 옮기는 쥐들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조류를 관찰하기 위해 찾았던 야생의 서식지가 치명적 바이러스의 잠입 경로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히 우슈아이아의 쓰레기 매립지 인근에서 벌인 탐조 활동이 유력한 감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가 유독 우려스러운 이유는 바이러스의 정체 때문이다. 사실 한타바이러스는 코로나19처럼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국의학저널(BMJ)’과 ‘뉴스위크’는 이번 유행의 원인이 ‘안데스 변종’이라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한타바이러스는 대부분 감염된 들쥐나 생쥐의 배설물, 침 등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지만, ‘안데스 변종’은 드물게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하다.
5월 10일 스페인 테네리페 섬에 정박한 MV 혼디우스호에서 하선한 승객이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이와 관련,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LSHTM)의 감염병 전문가인 마이클 마크스 교수는 “크루즈선처럼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밀접하게 접촉하는 환경이 바이러스 전파의 최적 조건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WHO는 “현재로서는 더 큰 규모의 유행 조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록 안데스 변종이긴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쉽게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아니라는 것이다. 거브러여수스 WHO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공중보건 위험도는 낮다”고 강조했으며, 호주의 생물안보 전문가 아리풀 이슬람 박사도 “다음 팬데믹은 언제든 올 수 있지만 이번 사태 때문에 공황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타바이러스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아니다. 숙주와 전파 경로, 증상 등에 대해 이미 상당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 보건복지부(HHS)의 브라이언 크리스틴 제독 역시 기자회견에서 “안데스형 바이러스는 쉽게 전파되지 않는다”면서 “이미 증상이 나타난 감염자와 장시간 밀접 접촉해야만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감이나 코로나19처럼 공공장소에서 쉽게 퍼지는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집단 감염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크루즈선이라는 특수 환경을 주목하고 있다. WHO는 무엇보다 승객들이 장기간 매우 밀접하게 생활한 점이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선내에서는 식사, 휴식, 탐험 활동 대부분이 공동 공간에서 이뤄졌으며, 객실도 한 구역에 밀집돼 있었다.
초기에 바이러스 정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해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승객들 상당수는 감염 사실이 공식 확인되기 전 이미 중간 기항지에서 하선했다. 일부는 세인트헬레나, 일부는 유럽과 미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말해 결국 바이러스 확인 시점에는 이미 수십 명이 여러 나라로 흩어진 상태였다. 이에 CNN은 미국 내에서만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조지아, 텍사스 등 여러 지역으로 승객들이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사정이 이러니 WHO는 크루즈에 승선했던 모든 승객과 승무원들에게 최대 42일간 격리를 권고했다. 안데스형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최대 6~8주에 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높은 치명률은 분명 우려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신세계 한타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HPS)의 치명률은 최대 40~50%에 달할 수 있다. 실제 이번 크루즈 감염 사태에서도 감염자 상당수가 중증 폐렴과 호흡부전을 겪었다.
5월 11일 MV 혼디우스호의 승객들이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에서 에이트호번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이번 사태는 크루즈선을 넘어 항공기 승객들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이탈리아 통신사 ANSA는 한타바이러스로 사망한 여성과 같은 항공편에 탑승했던 25세 이탈리아 남성이 의심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 이는 크루즈 승객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 이어진 첫 ‘3차 감염’ 사례가 된다. 다만 로이터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실제로는 비행기 이륙 전 상태가 악화돼 하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전 세계 보건당국은 해당 항공기 승객과 승무원들을 면밀히 추적 관찰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선상 의료진과 보건당국의 미숙한 대응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뉴욕포스트’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한 프랑스 여성 승객은 선내에서 독감 증상을 호소했으나, 의료진으로부터 “단순한 불안 증세나 스트레스일 뿐”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스페인 보건부 장관 하비에르 파디야 베르날데스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환자가 며칠 전 있었던 기침 증상이 사라졌다고 말하자 의료진은 이를 한타바이러스와 관련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여성은 프랑스 귀국 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여성의 사례는 한타바이러스 초기 증상이 독감이나 일반 바이러스 질환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전문가들은 초기 고열, 두통, 근육통, 복통, 설사 등이 흔한 감기나 독감처럼 보일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이번 크루즈 사태가 단순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통신사 UPI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올해 들어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칠레는 올해 들어 39건의 확진 사례와 높은 치명률을 기록했으며, 아르헨티나 역시 42건 이상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연구진들은 기후 변화를 지목하고 있다. 겨울이 짧고 온화해지면서 바이러스의 매개가 되는 설치류 개체수가 증가했고, 동시에 인간 활동 지역과 겹치는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기존의 산악 지역이 아닌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감염 사례가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WHO는 전 세계 위험도를 ‘낮음’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일반 관광 활동은 설치류에 노출될 위험이 거의 없다”며 여행 및 무역 제한 조치도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 감염 가능성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WHO는 “첫 번째 사례 발생 이후 감염 사실이 확인되기까지 승객들 사이에 많은 상호작용이 있었다”면서 “잠복기와 접촉 상황을 고려할 때 추가 확진 사례가 더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세계 각국은 저마다 사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코로나19의 공포가 재연되지 않도록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타바이러스란? 바닥 쓸다가 감염될 수도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를 매개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다. 해외 언론들은 흔히 ‘쥐 바이러스’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들쥐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 설치류가 주요 숙주 역할을 한다.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를 매개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다. 들쥐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 설치류가 주요 숙주 역할을 한다. 사진=DPA/연합뉴스‘한타’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유래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 사이에서 발생한 원인 불명의 출혈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바이러스가 바로 한탄강 인근에서 채집된 들쥐에서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후 바이러스 이름도 한탄강에서 따와 ‘한타(Hanta)’로 이름 붙여졌다.
현재 한타바이러스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 바이러스 종류와 증상 양상은 다르다. 크게는 아시아 및 유럽형, 북남미형으로 나뉜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형태는 주로 신증후군출혈열(HFRS)을 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유행성 출혈열이라고 불린다. 갑작스러운 고열과 두통, 출혈, 신장 기능 이상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일정 수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군부대나 야외 활동 지역에서 감염 사례가 보고되곤 한다.
반면, 북미와 남미 일부에서 발생하는 한타바이러스는 폐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를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HPS)이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독감처럼 보이지만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며 심각한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일부 유형은 치사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안데스형 바이러스는 칠레, 아르헨티나 등 주로 남미 지역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한타바이러스다. 해외 연구진은 이 바이러스가 현재까지 확인된 한타바이러스 가운데 드물게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있는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한타바이러스의 가장 일반적인 감염 경로는 설치류 배설물 흡입이다. 감염된 설치류의 배설물, 침 등이 마르면서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 중으로 퍼지고, 이를 사람이 들이마실 때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특히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장소는 환기가 잘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다. 오래 비어 있던 창고, 농막, 산장, 폐가, 캠핑장 등이 대표적이다.
설치류 배설물이 쌓여 있는 공간을 마른 빗자루로 청소할 경우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 중에 퍼질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이에 ‘유로뉴스’는 “바닥을 쓸다가 감염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으며, 해외 캠핑 커뮤니티에서는 산장이나 쉼터 청소 시에는 반드시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설치류 배설물을 발견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에는 가장 먼저 충분히 환기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소독제를 사용한 습식 청소를 실시하고, 이때 장갑과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현재까지 연구에 따르면 같은 침대를 사용하거나 장시간 밀폐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수준의 밀접 접촉이 주요 감염 위험 요소로 꼽힌다. 음식 공유나 체액 접촉 가능성은 현재 연구 대상이다.
아직 한타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는 제한적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 연구도 진행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수준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