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수는 지난해 12월 인천지방법원으로부터 호적 정정 및 개명 허가를 받아 호적상 성별을 ‘남’에서 ‘여’로 정정하고, 이름도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바꿨다. 말 그대로 합법적으로 여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경찰 조사에 따르면 하리수는 이미 2000년 12월 ‘최지원’이라는 이름의 여성 호적을 불법으로 얻어 사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2개의 여성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었던 셈. 대체 하리수가 불법적으로라도 여성 호적을 얻어야 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8월 하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허위 출생신고에 의한 일가 창립 수법으로 호적을 이중으로 얻게 해준 혐의’로 행정서사 신아무개씨(71)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신씨의 과거 ‘의뢰인’들 가운데 하리수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하리수는 이번 사건에 연루돼 최근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하리수는 신씨가 저지른 ‘공정증서원본 부실기재죄’의 ‘공범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증서원본 부실기재죄’는 권리 의무에 관한 사실을 증명하는 공문서인 공정증서를 공무원에게 허위신고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게 한 자를 처벌하기 위한 죄목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행정서사 사무실을 운영해온 신씨는 지난 99년 3월부터 2000년 12월 사이에 여성 호적을 갖고 싶어하는 남성 트랜스젠더 11명을 상대로 1인당 3백50만∼8백만원씩 모두 5천여만원을 받고 호적을 이중으로 얻게 한 뒤 여성 주민등록증을 부정발급 받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리수는 2000년 12월8일 신씨에게 8백만원을 주고 ‘최지원’이라는 여성 호적을 얻어, 불법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범법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1999년 1월부터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실시된 ‘무호적자 취적 지원계획’ 덕분. 신씨와 하리수 등은 무호적자를 대상으로 호적 발급을 가능토록 한 법의 허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혐의로 처벌 받게 되면 최악의 경우 법정구속형이지만 가볍게는 벌금형에 그칠 수도 있다.
경찰은 신씨의 행적을 뒤쫓던 과정에서 하리수가 관련됐음을 알아냈다고 한다. 또한 달아난 신씨의 공범 석아무개씨는 현재 지명수배중이다. 석씨는 신씨와 트랜스젠더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 지난해 12월 방송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는 ‘가수’ 하리수. | ||
한편 하리수의 소속사 TTM 엔터테인먼트측은 “연예계 데뷔 이전의 일이라 이런 사실을 몰랐다. 여성 호적 취득은 불법이지만 사실 트랜스젠더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있던 일이라고 한다.
하리수 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유명 연예인인 데다 공인이라 더욱 크게 알려진 것 같다. 하리수의 입장은 경찰에서도 많이 이해해주는 상황이다. 아니라면 대만 출국까지 허락해줬겠나. 잘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경찰측에서도 하리수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데다 당시 하리수의 눈물겨운 사정을 전해듣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의 사정이 딱해서 참작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며 “가벼운 벌금형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하리수가 불법으로 호적을 취득한 2000년은 그가 한창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며 밤무대 활동을 하던 시기.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꿈’ 많은 하리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성별이었던 것 같다. 트랜스젠더 가수가 설 땅은 양지의 연예계에도, 또 음지의 밤무대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이듬해 하리수는 영화 <노랑머리 2>를 통해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트랜스젠더 ‘J’를 연기하며 스크린에 데뷔했다. 당시 하리수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장면 중에 ‘주민증 까’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털어놨었다. 어쩌면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만의 비밀이었던 ‘가짜 주민증’이 하리수의 뇌리를 스쳤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브의 마음을 갖고 태어난 아담’으로 불리던 하리수. 자신이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공개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그녀지만 아직‘과거’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김민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