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장소인 주산지에 설치됐던 암자(왼쪽)는 환경부 지침에 따라 철거됐다. | ||
지난 10월 초 기자가 제주도 <올인> 세트장이 설치되어 있는 ‘섭지코지’를 방문했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모든 관광 지도에 빨간 글씨로 또렷하게 적혀 있던 ‘섭지코지-올인 촬영현장’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현장’은 형편없는 상태였다. 현지 주민의 얘기로는 얼마 전 태풍이 치명타를 입혔다고는 하지만 이미 상당 부분이 망가져 있었다고 한다.
극중 송혜교가 지내던 수녀원만 달랑 있을 뿐, 나머지는 보존 상태가 엉망이었다. 송혜교와 이병헌의 라스트 신을 장식한 아름다운 건물의 지붕은 바람에 날아간 듯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고 벽체는 희뿌연한 색상으로 변질돼 있었다. 뒷면은 아예 사라진 상태. 수녀원 앞마당은 잡초만 무성했다. 관광객에게 끊임없이 비난을 들어온 <올인> 세트장은 결국 지난 13일 철거됐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 역시 비슷한 상황. 강릉을 지나 속초 엑스포 전시장을 지날 무렵, ‘가을동화 촬영지’라는 커다란 문구가 눈에 띈다. 무심코 지나던 관광객들도 한 번쯤 들러 보게 할 만큼 크고 화려한 선전문구로 장식돼 있다. 그 문구를 따라가 살펴보니 고작 빨간색 전화부스 하나가 설치돼 있다. “겨우 전화박스 하나야?”란 질문이 저절로 나올 만큼 평범한 전화부스였다. 주변에 이것 이외에 이렇다 할 볼 거리는 없다.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의 촬영지인 주왕산국립공원 ‘주산지’라는 연못에 설치돼 있던 ‘연못 위의 암자’는 ‘자연보호’를 위한 환경부의 지침 때문에 철거되는 운명을 맞봐야 했다.
강수정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