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예쁘게 포장된 연예인들을 보며 열광할 때, 방송작가들에게는 그들이 예쁘게 포장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런 재미가 쏠쏠한 곳. 연예인들이 일반인의 모습으로 들어와 감독의 큐사인을 받고 스타의 모습으로 변신을 해서 나가는 그 비밀스런 공간, 방송국 대기실에서 펼쳐지는 희로애락을 오늘은 이야기해 볼까 한다.
방송 3사 통틀어 작가들의 애간장을 가장 졸이게 하는 ‘만년(?) 지각 대장’은 단연 문희준이다. 일이십 분쯤 기다릴 때만 해도 출연자들끼리 다들 그간 안부도 묻고 수다도 떤다지만,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대기실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게 마련. 그때부터 사방팔방 수소문해 ‘문희준 수배작전’이 펼쳐진다.
선배들의 ‘분노’의 한계를 초월해 ‘제발 나타나서 녹화만이라도 하자’ 싶을 때쯤 되면, 헐레벌떡 100미터 선수처럼 뛰어들어와 녹화에 들어가는데…. 막상 녹화가 시작되면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프로그램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일등공신이 된다. 그래서 오히려 녹화가 다 끝나고 해산할 때쯤엔 “희준이 때문에 많이 웃었다”고 도리어 칭찬을 받고 돌아가니… 언제나 엄청난 모험수(?)를 두며 그를 섭외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여자연예인들이 출연할 때는 분장시간 체크가 관건이다. 일찍 도착한다 하더라도 분장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녹화시간이 늦어지는 건 마찬가지. 핑클의 옥주현은 유난(?)을 떤다 싶을 정도로 대식구를 거느리며 나타나는데, 코디,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는 물론이고 부수적으로 따라들어오는 짐만 해도 좀(?) 보태면 6·25 전쟁 피난짐 저리 가라다. 그래서 예쁜 여자연예인들을 섭외할 때는 일부러 시간을 앞당겨 일러두기도 한다.
▲ 조혜련 신동엽 세븐(왼쪽부터) | ||
대기실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하는 건 아무래도 프로그램의 안방마님이라 할 수 있는 MC들이다. MC계의 ‘기분파’라 할 수 있는 이경규는 그날 그날 컨디션을 무척 타는 타입인데 게스트에 대한 편애(?)도 심한 편이라 그가 하는 프로그램 스태프들은 녹화하는 날 이경규의 컨디션을 제일 먼저 체크한다고 한다.
그와 정반대로 이홍렬의 경우 ‘게스트는 왕이다’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서비스형 MC. 예전에 <이홍렬 쇼>를 진행할 때 SBS 대기실이 그가 게스트를 위해 준비한 음료수와 직접 뽑은 커피향으로 가득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서열 따지기로 유명한 방송가에서 고참인 그가 자신을 먼저 낮춤으로써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건 가히 프로다운 면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MC보다 웃기는 신동엽은 의외로 대기실에선 침묵으로 일관하는 스타일인데, 녹화 전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탐독하기로 유명하다. 일각에서는 그의 그런 모습이 관리(?)하기 힘든 영화배우들이나 까다로운 게스트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말도 있으나, 그가 풍기는 권위 어린 침묵은 ‘MC인 나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오늘 방송 못하면 두고보자∼’라는 무언의 암시가 아닐까.
슛이 들어가기 전 대기실 풍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대개는 ‘대본 집착파’와 ‘대본 외면파’로 나뉘는데 ‘대본 집착파’들의 80%는 신인들이다. 어떻게 해서든 떠 보려는 그들에게 대본은 생명과도 같아 지나치게 글자 하나하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녹화에 들어가면 오히려 재미는 떨어진다. 왜냐하면 방송이란 것이 워낙 변수도 많은데 자기가 계산한 대로 가지 않으면 말문이 콱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 문희준(왼쪽), 옥주현은 대기실에 ‘대식구’를 거느리고 나타난다.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로커 전인권과 신인가수 세븐은 특이한 ‘목청풀기’로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기실 소음파’로 분류된다. 전인권의 경우 그 특유의 발성연습이 워낙 유명한 탓에 올 대종상 시상식 때는 아예 따로 개인 대기실이 주어졌다고 한다. 세븐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아무리 많아도 한쪽 구석에서 눈 한 번 안 마주치고 자신만의 노래연습을 한다. 중요한 건 이들의 목청풀기는 나가는 프로그램이 음악프로건 오락프로건 교양프로건 상관없이 진행된다고 알려졌다는 점.
아무런 이유 없이 대기실 분위기가 썰렁해질 때도 있다. 이때는 십중팔구 게스트들이 서로 앙숙이거나, 사귀다 깨졌던 전력이 있던 경우다. 몇 년 전 이혼한 중년 여성탤런트 K와 영화계 남자 감초연기자로 주가가 높은 K씨도 대기실 분위기를 미묘하게 했던 장본인. 앙숙이라고 하기엔 여자가 나이가 많고, 사귀었다고 하기엔 남자가 유부남이라 ‘설마설마’ 했는데 뒤를 캐봤더니 사귀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돼 같은 프로에 섭외가 됐던 것이다.
때로 연예인들은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 같다. 오히려 팔색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대기실과 스튜디오 사이를 넘나들며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달리 연예인이 아니구나…’라는 걸 새삼 느끼며 가끔 대기실 앞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세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