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근 함소원이 나서서 헤어누드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과연 이를 통해 또 하나의 ‘벽’이 허물어질지는 확실치 않으나 영화 등 전 분야에 걸쳐서 ‘금기 허물기’가 시도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과연 철옹성 같던 ‘금기 조항’에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 걸까.
헤어누드가 포함된 누드집 출간은 한국 사회에서 언급하기도 힘든 금기 중 금기였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미 지난 95년 헤어누드가 합법화됐으나 우리에게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장 예쁜 사진이 헤어누드다. 그냥 이 사진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는 신인 가수 함소원을 통해 헤어누드가 사회적인 논의 대상으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함소원측은 지난 17일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영등위) 등 관련 부처에 헤어누드 사진집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 함소원 누드 제작사인 (주)애니엠의 김진억 이사는 “심의를 요청했지만 아직 자세한 사항은 언급할 수 없다”며 “관련 부처가 여러 곳이고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여서 결정될 때까지는 일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함소원측이 요청한 심의가 받아들여질 경우 내년에는 더욱 뜨거운 연예인 누드 열풍이 몰아칠 전망이지만 헤어누드의 인터넷 서비스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영등위의 심의 결과를 떠나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헤어 누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계의 경우 상당한 진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죽어도 좋아>에 이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헤어’ 노출이 ‘허용’됐고, 최근 <올드보이>를 통해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마저 무너졌다.
영화 <올드보이>는 한마디로 ‘근친상간으로 쌓인 원한을 근친상간으로 갚는 복수극’이다. 게다가 누나와 남동생, 아버지와 딸의 정사 장면이 상당히 높은 수위로 그려져 있다.
근친상간은 영화계는 물론이고 소설, 만화, 연극 등 전반적인 문화 영역에서 금기시돼 온 소재였다. 하지만 영등위는 영화 <올드보이> 등급 심사 과정에서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영등위 영화소위원회 정홍택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심의위원들의 전체 의견으로 나온 결과를 개별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근친상간이 영화의 주된 소재는 아니라고 본다”고 위원장으로서의 견해를 밝혔다.
대북 관련 사안에서도 상당 부분 ‘금기’가 무너지고 있다. 올 초에 개봉된 <이중간첩>의 경우 간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김일성을 찬양하는 이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했고 안기부의 간첩사건 조작 장면까지 등장시켰다.
영화적 표현과 관련된 금기 파괴도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2년에만 해도 <죽어도 좋아>의 표현·노출 수위를 두고 영화계와 영등위가 극한 대립 상황을 연출한 끝에 제한적인 ‘헤어’ 노출이 허용됐다. 하지만 이후 영화 <플라스틱 트리>에서 20여 초 이상 ‘헤어’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심사를 통과했고 영화 <써클>에서는 성기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허용됐다.
‘파격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등위는 등급 심사 기준을 낮추고 있는 추세지만 불만의 소리는 여전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와 다른 분야 사이에 존재하는 심사 기준의 불균형.
<올드보이>에서 주된 소재로 등장한 ‘근친상간’의 경우 만화를 비롯한 다른 장르에서는 여전히 금기사항이다. 출판물의 경우 지난 2월27일부터 시행된 ‘출판 및 인쇄 진흥법’에서 지정한 ‘간행물 유해성 심의 기준’에 따르면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다. 출판계에서의 ‘불법행위’가 영화계에서는 ‘합법’이 된 셈이다.
에로 업계의 불만도 상당하다. 같은 베드신이라 할지라도 심사 기준이 영화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에로 업계가 갖는 상대적인 박탈감도 상당하다. 이와 관련, 헌법 소원을 제기한 씨네프로의 이강림 대표는 “에로물에 대해 올해 들어 심사 기준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나 영화를 심의하는 기준과는 여전히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영화계 역시 영등위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풀지 않고 있다. 영화 <킬빌>의 등급 심사 과정에서 보여준 영등위의 모습에 대해 ‘영등위 개혁을 위한 포럼’은 18일 성명을 내고 김수용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다. <킬빌>은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가 일부 장면을 삭제한 뒤 개봉됐다.
내년 들어서도 공연·예술의 금기를 허물기 위한 작업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가 강도를 높여 ‘영등위 개혁’을 부르짖는 가운데 다른 분야에서도 영화 수준의 심의 기준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영화관계자들은 “영등위가 상당 부분 심사 기준을 낮추고도 비난에 휩싸이는 것은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작품성이라는 애매한 잣대로 들쭉날쭉한 판정을 하지 말고 먼저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