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기자 kjlim@ilyo.co.kr | ||
추억이란 자고로 누구에게나 아련하고 소중한 법인데,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뜬 스타가 있다. 토요일 저녁 MBC <코미디 하우스>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바보 연기로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 정준하가 그 주인공.
정준하라는 이름은 몰라도 ‘편견을 버려’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유행어를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우울한 일이 많은 요즈음 국민들을 웃게 만드는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는 정준하를 만나 그의 ‘바보스럽지 않은’ 인생을 엿보았다.
정준하를 만나기 위해 MBC 스튜디오를 찾은 지난 10일 그는 어김없는 바보의 모습으로 한창 ‘노브레인 서바이버’를 녹화중이었다. 대본연습에 정신이 없던 그는 카메라에 불이 켜지자 곧 얼굴을 찡그리며 바보로 ‘변신’한다.
이날 역시 정준하의 휴대폰에 대한 ‘안 좋은 추억’ 하나가 소개됐다. “얼마 전 밤이었어요. 어떤 여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어요. ‘오빠, 나 아파요. 일 대 일 성인대화.’ 여자가 아프다기에 전화를 했는데 이 여자가 ‘오빠, 나 뜨거워요’라며 끙끙대는 거예요. 아니 얼마나 아프면 몸이 뜨겁겠어요. 그래서….” 그런데 잠시 뒤 후배 개그맨이 NG를 내자 정준하는 관객들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라며 현장을 평정하는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녹화가 끝난 뒤 정준하를 만났다. 가발 속에 가려져 있던 퍼머머리와 분장을 지운 맨얼굴을 드러낸 그는 언제 바보였던가 싶게 진지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원래 NG가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잘 안 풀렸다”며 속상해하던 그는 “이젠 휴대폰도 그만 죽여야겠다”며 이내 웃음을 보였다.
“형광펜 깍지 끼우는 일, 냉동창고에서 박스 나르기, 웨이터, 결혼식 출장파티 나가 세팅하는 일, 도자기 공장, 배달부…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배운 것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였어요.”
그러다가 93년 개그맨 이휘재의 매니저를 맡으며 ‘인기’란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고 한다. 정준하는 “그땐 ‘이휘재 신화’였다”며 “인기가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지금 잘나가도 항상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얼마 전 절친한 선배인 가수 이은미가 그에게 해준 말이 있다고 한다. 인기란 ‘손에 쥐고 있는 모래와 같다’는 것. 즉 인기란 어느 순간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므로 이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잘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 ‘바보 연기’를 택했을까. 이미 숱한 개그계 선배들이 한번쯤 우려먹은 게 아니던가. 전혀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바보 개그’는 그래서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준하는 겁없이 도전장을 내민 것. 그는 “색깔이 다른 바보”라고 자신의 연기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방송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여자게스트들 중 몇몇은 정말 나와서 웃다가 ‘죽고’ 가신 분들도 있다”며 “신지 황보 유니가 그들”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가끔 너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게스트도 있다고. 실제로 이날 녹화에 초대된 탤런트 박광현도 자연스런 개그로 촬영장 분위기를 이끌었다.
정준하는 개그맨으로 뒤늦게 인기를 얻었지만 사업가로서는 이미 이름을 날렸다. 포장마차에 이어 지금은 강남에 꽤 규모가 큰 가라오케를 운영하며 큰돈도 만져보았다. 그리고 내년쯤에는 이휘재와 함께 연예기획사를 차릴 거창한 꿈도 품고 있다.
올해로 서른넷인 정준하는 슈퍼모델 출신 탤런트 C양과 좋은 만남을 가져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준하는 “아직 결혼 계획은 없다. 나는 괜찮지만 그 친구를 생각해서 말을 아끼고 싶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바보’답지 않게 조리 있고 진중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던 정준하. 왠지 그의 인생에서 앞으로 더 이상 ‘안 좋은 추억’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