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천생연분>의 ‘속옷신’. | ||
하지만 이를 직접 준비하는 연예인 스타일리스트의 입장에서 이 조합은 단순한 ‘재미’가 아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항상 노출 강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고, 시청자들에게 속옷을 통해 극중 컨셉트도 전달해야 한다. 스타일리스트들의 얘기를 통해 연예인과 속옷, 그 내밀한 세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천생연분>에는 유독 연예인의 속옷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두 주인공 안재욱과 황신혜의 코믹 베드신은 물론이고 속옷 차림으로 집안을 활보하는 권오중의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권오중의 화려한 트렁크 팬티는 최근 유행 패션으로 떴고 권오중과 조미령의 ‘속옷 조우 장면’은 <천생연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 정도다.
단순히 야한 장면에 등장하는 소품 정도로 보이는 이 속옷들 안에도 캐릭터의 성격이 녹아 있다. 우선 황신혜의 경우 드라마의 단계에 따라 세 가지 컨셉트가 마련된 상태. 드라마 초반에는 헐렁한 박스 스타일로 노처녀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겼다면 중반에는 캐주얼하면서도 섹시한 이미지,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섹시한 방향으로 코디할 계획이라는 게 스타일리스트의 설명이다.
안재욱의 경우 ‘귀여우면서 멍청한’ 캐릭터의 성격에 맞춰 조금은 튀는 속옷을 주로 입는다. 파랑과 빨강 체크무늬 팬티가 대표적인 경우. 튀는 것은 권오중의 트렁크 팬티도 마찬가지.
권오중의 스타일리스트인 박혜진씨는 “예쁜 디자인으로 준비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눈에 잘 띄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이는 캐릭터의 성향에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권오중과 조미령의 ‘속옷 조우’ 장면은 코믹한 상황으로 설정돼 조미령은 반바지에 슬립을 입었다. 사실 대본상에는 브래지어가 드러나는 여성적인 속옷이 제시됐지만 스타일리스트는 다른 의견이었다.
“장면의 특성상 여성스러움보다는 코믹이 우선이었다”는 스타일리스트 강민경씨는 ‘여성스러움은 조금 덜하지만 사랑스러워 보이는 속옷’을 준비해 제작진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 발랄하고 귀여운 속옷을 입은 <싱글즈>의 장진영(위쪽)과 농염하고 매혹적인 느낌을 살린 속옷을 입은 <밀애>의 김윤진. | ||
이 장면은 ‘성에 얽매이지 않는 발랄한 싱글의 모습’이라는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속옷 역시 ‘너무 여성스럽지 않으면서 발랄하며 귀엽고 예쁜’ 컨셉트로 준비됐다.
불륜을 소재로 한 <밀애>에서 김윤진이 준비한 속옷의 의상 컨셉트는 역시 ‘농염함’과 ‘매혹적인 자태’다. 스타일리스트 이봉선씨는 “살색톤의 속옷을 주로 이용했고 심플하면서도 매혹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면서 “니트, 슬립, 와이어 브래지어, 끈 슬립 등을 주로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은 일반 의상의 경우 대부분 유명 브랜드의 협찬을 받지만 속옷은 조금 다르다. 속옷을 입고 나오는 장면이 긴 영화의 경우 대부분 배우의 소장품 내지는 따로 구입한 속옷을 이용한다. 오랫동안 속옷을 입고 촬영해야 하는 까닭에 우선 몸에 잘 맞아야 하기 때문. 또한 입은 흔적(?)이 남을 가능성도 큰데 협찬 의상의 경우 다시 반납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밀애>의 김윤진이나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등 노출이 많았던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들은 대부분 속옷을 직접 구입해 입었다. 반면 속옷 장면이 짧은 경우에는 협찬을 받곤 하는데 <싱글즈>의 장진영이 대표적인 사례.
또한 속옷 장면이 맛보기로 짧게 스쳐지나가는 드라마의 경우에도 대부분 협찬을 받는다. 속옷의 특성상 협찬이 ‘증정품’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협찬 용품처럼 ‘반납’해야 한다.
아무리 잠깐 입었다 해도 연예인이 직접 입었던 속옷인데, 이 속옷들은 반납된 이후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캘빈클라인(CK) 언더웨어’ 홍보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디자인별로 협찬 분량을 별도로 마련해 협찬해준 뒤 샘플로 활용한다”며 “속옷의 특성상 ‘입었던 흔적’이 남아선 안 되기 때문에 별도의 ‘안전장치’를 하고 반드시 세탁해서 반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장치’는 신체의 특정부위와 접촉되는 속옷 부위에 남는 흔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얘기한다. 이를 위해 특정 부위에 테이프을 붙인 뒤 입거나, T팬티를 입고 그 위에 껴입는 방식이 주로 이용된다. 물론 세탁은 필수다.
연예인이 즐겨 입는 속옷 브랜드로는 CK 언더웨어, 토미 힐피거, 딤, 빅토리아 시크릿, 비비안 등을 들 수 있는데 대부분 속옷 한 벌 가격이 몇십 만원대를 호가하는 고가 명품 브랜드들이다.
▲ 드라마 <천생연분>의 권오중과 조미령 | ||
<천생연분> ‘속옷 조우’ 장면의 촬영 당시엔 조미령이 애초 준비된 속옷을 입기 거부해 문제가 됐다. 핑크색 슬립의 가슴 부분이 조금 비친다는 이유로 조미령이 입기를 거부한 것. 결국 스타일리스트가 살색 브래지어를 이용해 최대한 속이 비치지 않게 조치해 촬영이 가능했다. 살색 속옷의 경우 속이 비치는 것을 막아 촬영 현장에서 인기가 높다.
황신혜의 경우 본인과 스타일리스트는 좀 더 섹시한 컨셉트의 속옷을 입고 싶어하지만 심의 문제와 관련해 제작진이 노출 수위를 낮추려 해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신혼 여행 장면에서 황신혜가 입었던 속옷의 경우 앞 부분이 너무 많이 파인 디자인이라 제작진이 난처해했다는 후문이다.
극의 성격과 캐릭터, 분위기 등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극중 속옷들. 이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등장인물들의 속옷을 통해 극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도 한 가지 즐거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