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프랑스 성애 영화 <정사>는 실제 성교 장면이 그대로 등장해 물의를 빚은 끝에 일부 장면이 잘려나갔다. <죽어도 좋아>에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오럴섹스를 해주는 장면이 정면에서 카메라에 담겼다. 결국 이 장면은 잘 보이지 않게 어두 침침하게 처리됐다. 잘려나간 거나 다름없다.
한국에서는 감독도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현장에서 막 넘어온 따끈따끈한 ‘프린트’를 보며 가위질을 하는 곳이 편집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러닝 타임이 너무 길어서, 연기나 배경이 잘못돼서, 영화의 좀 더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 많은 장면들이 편집실에서 잘려나간다. 등장 인물이 너무 많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버전을 함께 찍은 다음 편집실에서 이어 붙이면서 ‘최선’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경우도 있다.
<올드보이>는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나머지를 버린 경우다. <올드보이>의 엔딩 무렵에 고통스러운 교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그 부분이다.
오대수(최민식 분)는 이우진(유지태 분)의 아파트에서 미도(강혜정 분)가 자신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수는 이미 미도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뒤다. 이우진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대수를 조롱한다. 그때 우진의 인공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리모컨이 대수의 손에 들어온다. 대수는 주저 없이 스위치를 누른다. 그때 방안의 오디오에서는 대수와 미도가 나누던 거친 정사의 교성이 흘러나온다.
<올드보이>의 제작진은 이 장면에서 원래 미도가 대수를 향해 부르던 ‘보고 싶은 얼굴’이 흘러나오게 찍었다. 그러나 결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삭제됐다. 노래보다 교성이 훨씬 잔인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흐름 때문에 등장 인물들이 조금씩 삭제된 경우는 허다하다. 군상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실미도>도 그런 경우다.
‘실미도’ 684부대 30여 명이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집단 주연의 <실미도>는 한정된 러닝 타임상 배우들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다루기가 힘겨웠다. 몇몇 등장 인물이 주연급으로 극을 이끌어가기는 하지만 영화 특성상 각각의 인물이 살아야 했다.
그러나 <실미도> 제작진은 편집 과정에서 그렇게 힘들게 찍은 잔인한 구타 장면이나 폭력 장면을 상당 부분 덜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까지 담겨진 장면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군화발로 짓이겨지고, 뭉개진 훈련병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된 부분도 일부 덜어내졌다. 때문에 몇몇 캐릭터는 처음보다 개성을 적잖이 잃었다.
김민종과 김정은이 주연했던 영화 <나비>는 상당한 분량이 덜어내졌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연출한 감독이 편집실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초반 김정은과 김민종이 정을 나누는 장면은 멜로 드라마적인 분위기로 찍혔다. 그러나 중반 이후 김정은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김민종을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장면은, 애초에 현장에서 찍힌 장면의 흐름과 편집된 장면의 흐름이 너무 많이 달랐다. 시나리오나 콘티와도 달라서 미리 시나리오를 읽었던 영화 관계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했을 정도였다.
조연들의 수난은 편집실에서 극에 달한다. <조폭 마누라>나 <도둑맞곤 못 살아> <2424> 같은 조연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이런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곤 한다.
사실 충무로의 영화 만드는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편집실에서의 무자비한 가위질은 이제 사라져가는 추세다. 세밀한 콘티 작업을 통해, 이미 현장에서 찍어온 필름과 시나리오가 많이 차이 나는 경우도 드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가위질은 필연적이다. 지금까지처럼 말이다.
지형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