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백병전 장면. | ||
<태극기…>에 투입된 순수 제작비 1백30억원은 한국 영화에서는 최고액이지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하면 고작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아시아 담당 바바라 로빈슨이 “이 정도 제작비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놀랍다”고 평했을 정도. 과연 ‘10분의 1’의 제작비를 가지고 어떻게 할리우드 대작들에 밀리지 않는 전투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제작 과정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만약 배경이 2차 대전이었다면 (그 돈으론) 절대 불가능했다.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 군사자문을 맡은 김세랑 군사잡지 <플래툰> 편집장의 설명이다.
<태극기…> 제작진이 주목한 한국전의 특징은 ‘백병전’과 ‘참호전’이었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 초기의 대단위 폭격으로 당시 한국의 산에는 나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때문에 외국 전쟁영화처럼 숲에서의 전투가 등장하지 않는 것.
산악 전투에서 나무라는 은폐·엄폐물이 없으면 참호를 파야 하고 이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백병전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백병전은 배우들의 고생을 필요로 하지만 총·포격 위주의 전투장면에 비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강제규 감독의 연출 능력. 할리우드 전쟁영화에 비해 절대적인 물량 부족을 대신하기 위해 강 감독은 전투 장면을 철저히 나눠서 촬영했다.
CG(컴퓨터그래픽)를 통해 전체 규모를 보여주는 장면(피난 열차 장면, 중공군 진격장면 등)과 배우들 각각에 초점을 맞춘 국지적 전투 장면을 구분해 촬영한 뒤 편집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구성한 것.
각 장면을 정밀히 쪼개서 보면 외화 대작과 수준 차이가 발견되지만 전체적인 스케일에서는 할리우드 대작들에 밀리지 않는 것도 이런 촬영 및 편집 방법 덕분이다.
▲ 영화 <태극기…> 제작 모습. | ||
<태극기…>도 사실은 B-29 폭격기가 평양 시내를 융단 폭격하는 100% CG 장면이 예정돼 있었지만 제작비 때문에 주인공의 머리위로 지나가는 폭격기 몇 대로 대신해야 했다. 여기서 강 감독은 이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표정과 감정선의 연결로 대규모 공습을 상상케 하는 특유의 연출력을 선보인다.
세 번째 ‘절감’ 요인은 주인공인 두 형제의 시점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1개 부대를 중심으로 영화가 이뤄진다.
반면 진태-진석(장동건과 원빈 분) 두 형제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태극기…>는 전투 장면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전투의 초점이 조연 배우들에게까지 자꾸 확대될 경우 그만큼 제작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태극기…>의 ‘다이어트 제작’을 카능케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스태프들의 땀과 열정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제작비 1백30억원의 집행을 담당한 이성훈 프로듀서는 “스태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시간과 노동력 등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할리우드 스태프들과 달리 <태극기…> 스태프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작업에 매달렸기 때문. “부족한 제작비는 스태프가 몸으로 때웠다”는 게 이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강제규 감독 역시 “필름 선택 등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면서 “스태프들의 철저한 준비로 촬영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100% ‘made in Korea’를 주장한 강 감독의 고집도 제작비 절감에 큰 몫을 했다. 전투 장면에서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를 주는 특수카메라 등 주요 장비를 할리우드에서 빌리지 않고 자체 제작했다. 또한 믹싱·현상·편집·OST 등 후반작업 역시 해외 기술 도입 없이 국내에서 진행했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태극기 휘날리며>. 하지만 어쩌면 이 정도는 할리우드 수준의 전쟁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을 사로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과 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관람평’에서 감동과 함께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그럼에도 관객들이 <태극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한국영화가 또 하나의 신화에 도전하는 현장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