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이름만으로도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세계적인 에로 명작들이 드디어 무삭제 상태로 스크린에 내걸리게 되는 걸까. 현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던 ‘제한상영관’ 설립이 최근 가시화되면서 영화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제한상영관이란 말 그대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성인 전용 영화만을 상영하는 극장. 그간 수익성 문제로 제한상영관을 여는 것이 금기시돼 왔지만 최근 한 영화 수입 업체가 제한상영관 개관에 적극 나서면서 출현을 눈앞에 두게 됐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과연 제한상영관 도입 이후 어떤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는지, 또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미리 살펴봤다.
오는 4월1일 서울 3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20여 개의 제한상영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 개관작으로는 이탈리아 출신 거장 틴토 브라스 감독의 작품 <칼리큘라>가 선정됐다. 이미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된 바 있지만 이는 40여 분이나 삭제된 필름으로 이번에는 무삭제 판으로 개봉될 예정.
이들 제한상영관은 <칼리큘라>를 수입한 영화수입·배급사 유니코리아와 체인 계약을 맺고 운영될 전망. 유니코리아측은 연간 10∼13편의 영화를 수입해 제한상영관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미 <칼리큘라> 외에도 <섹스-애나벨 청 스토리>와 <바바라>가 영등위의 수입추천을 받았다. 이외에도 두세 편의 영화가 수입추천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중이다.
우선 눈길을 끄는 작품들은 역시 세계적인 거장들의 무삭제 영화들. 틴토 브라스, 잘만 킹, 애드리언 라인 등 에로틱한 영상으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들의 작품들이 제한상영관을 통해 재개봉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작품이 이미 국내에서 적잖이 개봉된 바 있지만 상당 부분이 편집된 반쪽짜리 필름이었음을 감안할 때 무삭제판이 상영될 경우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유니코리아 민현석 이사는 “우리가 수입한 영화만으로 (제한상영관을 채우기에) 모자랄 경우 다른 영화사가 수입한 영화를 개봉할 수도 있다”면서 “벌써부터 몇몇 영화사에서 개봉 의사를 타진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제한상영관 역시 스크린쿼터를 지켜야 한다는 대목. 결국 1년 중 1백46일은 한국 영화가 상영돼야 한다. 이 부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바로 에로업계 관계자들이다.
심의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는 데다 개봉이 된 뒤 ‘제한상영관 상영작’이라는 타이틀로 비디오가 출시될 경우 바람을 탈 수도 있기 때문. 에로업계 역시 제한상영관 시대를 계기로 재기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현재 유니코리아측은 “자체 제작 또는 외주 제작으로 10여 편의 한국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니코리아는 90년대 초반 <데카당스 37’2> 등 극장용 에로영화를 여러 편 자체 제작한 바 있다. 외주 제작의 경우 국내 유수의 에로 비디오 제작사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민 이사는 “외주 제작과 관련해 여러 회사가 접촉해 오고 있다”고만 밝혔다.
또한 기존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으나 일부 장면 삭제나 모자이크 처리로 개봉됐던 한국 영화의 무삭제판도 재개봉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던 <죽어도 좋아> <주글래 살래>,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던 <노랑머리> <거짓말> 등이 후보작들. 여기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북한 영화 <동물의 쌍붙기>도 개봉작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는 별 영향력이 없어 보이는 일본 문화 전면 개방의 여파도 제한상영관 개관을 통해 파고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성인영화의 경우 그간 ‘비디오 출시는 극장 개봉작으로 제한한다’는 관련 규정으로 인해 상당히 제한적으로 개방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일본의 극장용 에로영화나 ‘잔혹’ 영화들이 제한상영관을 통해 개봉될 경우 ‘극장개봉작’으로 비디오 출시가 가능해진다. 결국 제한상영관을 거치면 일본 성인영화의 안방 상륙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제한상영관이 관객의 외면을 받을 경우 ‘극장 개봉작’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디오를 출시하려는 일본 영화와 에로 비디오의 ‘비상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유니코리아 한상윤 대표는 “제한상영관은 포르노 상영관이 아닌, 마니아들이 무삭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전용 극장이 될 것”이라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좋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제한 상영관이 완전히 틀을 잡을 경우 그 영향으로 한국 영화는 지금보다 훨씬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제한상영관이 저질문화의 산실로 전락할 경우 영화계의 ‘슬럼가’가 될 우려도 적지 않다.
과연 제한상영관은 어떤 모습으로 한국 극장가에 자신의 자리를 잡아갈까. 꽃 피는 봄, 4월1일 한국 영화사는 또 다른 페이지를 펼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