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왼쪽), 곽지민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렇다면 최근 베를린에서 발진한 ‘사마리아’호에 탑승한 두 여배우 곽지민과 한여름(최근 ‘서민정’에서 개명)의 경우는 어떨까. 과연 이들도 화제작에 출연해 톱스타로 거듭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실제 여고생으로 ‘원조교제’ 연기를 선보인 곽지민(19), ‘길거리 캐스팅’ 출신으로 끼와 재능을 과시한 한여름(21).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는 두 예비 스타의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여고생의 입장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사실 커다란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파격적이고 때로는 엽기적이라는 평까지 듣는 김 감독의 작품인 데다 소재가 원조교제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상반신을 노출한 채 코이프(수녀들이 쓰는 두건)를 쓰고 촬영한 누드 포스터. 영화가 채 공개되기도 전에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은 이 포스터 때문에 곽지민은 ‘에로배우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곽지민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사마리아>의 주연 여배우로 발탁됐다. 유럽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두 여고생과 친구의 죽음, 그리고 딸의 원조교제 현장을 보고 복수에 나서는 아버지….
그녀는 시나리오를 본 뒤 “도저히 못하겠다”며 한때 출연을 고사했다. 노출 장면은 물론이고 원조교제를 다룬 영화라는 점도 10대 소녀에겐 상당한 부담이었다. 이에 김기덕 감독은 노출 장면을 대폭 축소하고 시나리오도 일부 수정할 것을 약속하면서 결국 곽지민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당장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영화 출연을 반대했다. 게다가 친구들까지 말리며 나섰고 몇몇은 “그렇게까지 해서 연예인으로 뜨고 싶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특히 누드 포스터가 공개된 이후 한동안은 정말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 | ||
한국 배우 가운데 최연소로 레드 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린 그녀는 이제 비난하던 친구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렇게도 걱정하시던 선생님 역시 노출 장면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꼭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겠다”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곽지민은 어려서부터 연기자를 꿈꿔왔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한동안 꿈을 접어야 했다. 집요하게 부모를 설득한 통통한 소녀는 결국 어머니로부터 “10kg을 빼면 연기 활동을 허락한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부모는 그녀의 의지를 보려 했던 것. 그 뒤 단 한 달 반 만에 10kg을 빼는 데 성공한 곽지민은 고2 때 어머니와 함께 연기학원에 등록하며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콩깍지>,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 영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를 통해 비록 적은 분량이었지만 연기를 시작한 그녀는 결국 <사마리아>를 통해 당당히 주연 자리를 따냈다.
다만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곽지민의 노출 장면은 동성애 논란에 휩싸인 목욕탕 장면에서 등장하는 뒷모습이 전부. 이에 대해 그녀는 “본래 대중탕에도 잘 안 가는 성격인데 많은 스태프 앞에서 촬영한다는 게 당혹스러웠다”고 말할 정도다.
반면 또 한 명의 주인공 한여름은 곽지민과 색깔이 사뭇 다르다. 촬영 당시부터 속옷 차림으로 모텔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과 시장을 질주하는 장면으로 관심을 끌었던 한여름은 목욕탕신에서도 곽지민이 뒷모습만 드러낸 데 반해 가슴을 노출시킨다.
한여름은 이런 노출 연기에 대해 “망설였던 게 사실이지만 연기에 집중하려 마음먹으니까 노출은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고 말해 신인치고는 상당한 프로의식을 내비쳤다.
<사마리아>는 크게 세 가지 에피소드로 나눠지는데 한여름은 이 가운데 1편인 ‘바수밀다’의 주인공이고 곽지민은 2편 ‘사마리아’의 주인공이다. 다만 곽지민은 1편부터 3편까지 계속 출연하는 데 반해 한여름은 1편에서 죽음을 맞이해 비교적 촬영 분량이 적다. 게다가 포스터 촬영에서도 배제됐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한여름의 아쉬움은 기자시사회 이후 많이 사그러든 듯한 모습이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그녀에게 각종 매체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 서로를 의식한 탓이지 이들 두 여배우는 기자간담회장에서 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여름은 최근 맥이 끊어진 듯했던 ‘길거리 캐스팅’ 출신 신인이다. 길거리에서 픽업된 뒤 여성잡지 모델을 거쳐 새한렌즈, SK 엔크린 등 CF 모델로 활동했고 이번 영화로 연기자로 데뷔했다. 전형적인 미인형이라기보단 개성 있는 스타일이라는 점도 배우로서의 장점으로 꼽힌다.
앞으로도 이들이 해외영화제에서 당당히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할 거목으로 성장할지 아니면 잠시 명멸하는 반짝스타에 불과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마리아>를 통해 김기덕 감독이 발굴한 두 명의 좋은 배우를 만났다는 사실은 분명 관객들 입장에서 좋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