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중 수라간 나인으로 시작해 임금의 주치의가 된 장금의 사랑과 복수, 우정을 아우른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곧 막을 내린다. | ||
<대장금>은 이영애의 화려한 복귀와 함께 양미경 견미리 임현식 금보라 등 탄탄한 조연들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지진희와 그밖에 여러 신인 연기자들을 한순간에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다. 아마도 당분간 시청자들은 주인공 장금과 민정호 종사관은 물론 한상궁 정상궁 최상궁 덕구 연생 중종 민상궁 창이 영노 등 극중 캐릭터 하나하나까지 기억의 갈피 속에 남겨둘 것이다.
지난해 여름 첫 촬영이 시작된 <대장금>은 초반부터 날씨로 인해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당시엔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던 상황. 여느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그날 그날 나오는 ‘쪽대본’에 애를 태워야 했다면 <대장금> 출연진들은 대본이 아닌 날씨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당시 현장의 스태프들은 “대본은 나왔는데 날씨가 문제”라며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며 하소연들을 하곤 했다. 덩달아 연기자들이 손에 쥔 대본도 넝마가 되기 일쑤였다고 하는데 이는 촬영이 자꾸 연기돼 다 외운 대본을 ‘보고 또 보고’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오랜 대장정의 끝을 눈앞에 두고 있는 <대장금>. 이 아쉬운 시점에 그간 TV에 담지 못했던 촬영장과 연기자들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출연진과 제작진이 가슴 한켠에 간직했던 ‘장외 대장금 스토리’를 모아봤다.
야외촬영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몇 달 전 기자가 촬영장을 찾았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창 임현식(덕구 역)이 애드리브에 몰두한 순간 시작된 소음은 몇 분 동안 끊이지 않더니 잠시 뒤 하늘에는 비행기까지 날아다녀 제작진을 망연자실(?)하게 했다.
추위도 출연진들을 괴롭힌 복병 중 하나였다. 지난 겨울 <대장금> 연기자들에게 모포와 장갑은 필수였고 심지어 손난로와 귀마개까지 동원해야 했다. 더구나 눈밭에서 헤매는 신을 찍었던 이영애와 지진희(민정호 역), 야외 목욕신까지 촬영했던 박은혜(연생 역)와 최자혜(창이 역)는 지난 겨울의 추위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털어놓기도.
<대장금>은 이곳 외에도 전국 각지를 돌며 야외촬영을 했다. 특히 장금의 엄마 명희(김혜선 분)가 묻힌 산속의 묘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 부근에서 촬영했는데 얼마 전 최상궁(견미리 분)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돌무덤이 있는 이곳은 ‘전국 9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장소. TV 화면에 언뜻 보였던 입구 쪽 바위 절벽에 있는 송악은 천연기념물 367호로 지정돼 있다고.
기자가 수차례 <대장금>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마다 이영애는 언제나 대본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촬영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만큼 현장의 스태프들도 이영애를 배려해주려 애쓰는 듯 보였다. 촬영장 한쪽에는 이영애를 위한 ‘전용의자’가 마련돼 있을 정도.
이영애는 촬영이 비는 때면 초록색 모포를 덮고 난롯가에서 감정을 흩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이영애의 매니저는 촬영하는 동안 짬짬이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로 그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자료용으로 시간 날 때마다 찍어두고 있다”는 설명. 현장에는 국내 매체뿐 아니라 대만 홍콩 등 해외취재진들이 적잖이 방문해 <대장금>에 대한 관심을 짐작케 했다.
카메라 밖 ‘비공식적’인 이영애의 모습은 과연 동료 연기자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이영애는 깍쟁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선후배 연기자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얻고 있었다. 처음엔 그에게 다가가기 힘들어하던 후배 연기자들도 이영애가 싸 가지고 온 도시락과 간식을 먹어본 다음에는 거리감이 없어졌단다. 수라간 나인 출신다운 ‘로비’(?)가 아닌가.
수많은 <대장금>의 팬들 중 창이와 민상궁 커플을 미워하는 이들이 있을까. 비록 ‘가늘고 길게’가 모토이지만, 장금과 연생의 뒤에서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두 사람을 재미있게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많다.
▲ 카메라 밖 숨은 장면들 (위부터)이영애의 포승줄을 대신 잡고 있는 스태프,폰카로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연기자들, 돌부처를 보고 있는 이병훈 PD와 임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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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숙명을 알고 있었기에 최자혜는 “지금 빠져도 정말 여한이 없어요”라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그간 몇몇 작은 역할을 맡은 적은 있었지만 <대장금>만큼 그를 주목받는 연기자로 키워준 작품은 없었기 때문.
그런데 이병훈 PD의 ‘요청’으로 두 사람은 계속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20여 일쯤 촬영을 쉬다가 이 PD의 부름을 받은 최자혜는 여전히 사랑스런 연기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극 중반까지만 해도 “소속사를 어디로 정할지 고민중”이라며 인터뷰 장소에 ‘홀로’ 찾아왔던 최자혜는 이제 매니저를 대동하고 다니는 어엿한 스타로 성장했다.
한편 <대장금>은 인기만큼 탈도 많았다. 사극의 특성상 철저한 고증을 거쳐야 하는 만큼 제작진들은 자그마한 부분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예리한 눈길을 피할 수는 없는 법. 몇몇 실수가 시청자들에 의해 지적됐는데 시대배경과 맞지 않는 설정이나 표절 의혹이 대표적이었다.
17부에 등장했던 ‘만한전석’은 조선 중종 당시 중국의 시대배경인 명나라가 아닌 청나라 때의 최고요리였고, 제주도에 ‘관찰사’를 파견한다는 내용은 ‘목사’로 바뀌어야 했다. 또한 MBC에서 지난 95년 방영됐던 <찬품단자>와 허영만의 만화 <식객>,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 등을 표절했다는 의혹까지 제
기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높아지자 이병훈 PD는 직접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올려 수습에 나섰다. 이후 내의원 스토리로 넘어가면서 이 PD와 김영현 작가는 더욱 고증에 신경을 썼다는 후문. 까다로운 시청자들이 극의 완성도를 높여준 셈이다.
등장인물이 많은 사극에는 엑스트라와 대역 연기자가 여럿 필요하게 마련. <대장금>에서도 숨은 조역들이 많았는데 이들 모두 박수를 받기에 마땅하다. 얼마 전 최상궁(견미리 분)이 절벽에서 최후를 맞이하던 장면에선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역이 이를 대신했다. 또한 장금과 민정호가 불타는 마을에서 말을 타는 장면을 찍을 때도 남자 스턴트맨 두 명이 분장을 하고 대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단다.
극의 후반부가 의녀 이야기인 만큼 유독 침 맞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출연자들 대부분이 침 맞는 것은 두려워한다고. 때문에 팔이나 다리 배 등에 침을 맞을 때는 전부 대역이 대신 맞고 있다. 조연출 최병길 PD는 “침 맞는 장면은 다들 꺼려하기 때문에 대역들도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그래서 침을 여러 번 맞은 한 대역 연기자에게는 출연료를 더 얹어주기도 했단다.
얼굴에 침 맞는 장면이 나왔던 박은혜(연생 분)와 임호(중종 분)의 경우엔 대역을 쓸 수가 없었다. 겁이 많은 박은혜는 당시 “신비(한지민 분)가 나랑 닮았는데 바꿔주시면 안돼요”라며 애원까지 했다고. 임호 역시 대본을 보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른바 ‘침 장면’에서는 드라마 자문을 맡고 있는 동국대 한방병원 한의사들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혈을 골라 침을 놓아준다고.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생각시들과 나인들 역은 거의 모두 1일 아르바이트생들이 연기하고 있다. 촬영장에는 보통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여 명 가까운 엑스트라들이 대기상태에 있다. 이들의 일당은 3만원 안팎. 지루한 기다림 때문인지 간혹 잡담을 하다가 현장 스태프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대장금>의 화면은 텅 비어 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