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자동 이발사> | ||
문제는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을 경우 수만명까지 동원되는 엑스트라를 몇몇 스태프가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
“천사 같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영화를 망치려는 ‘악마’들로 보였다.”
<보리울의 여름>의 이민용 감독의 말이다. 어린이들의 축구를 통한 종교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에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들 가운데 아역배우는 몇몇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엑스트라였다. 촬영지였던 전라북도 김제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차용’했던 것.
하지만 촬영 초반에는 ‘처녀 출연자’답게 말을 잘 듣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통제 불능의 상태로 접어들고 말았다. 당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이 감독은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는 절대 영화를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의 4·19 장면에 시위대로 출연한 이들도 촬영지인 전라북도 익산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초반에는 열의를 보이던 이들은 추위와 반복되는 촬영으로 지쳐가더니 결국 점심 식사 이후 절반가량이 사라버렸다. 스태프들의 ‘추격’과 학생들의 ‘도망’이 반복된 이날은 제작진에게 가장 힘들었던 하루로 기억되고 있다.
더욱 어려운 경우는 중국 로케이션. 중국 현지인 엑스트라는 말도 안 통하는 데다 행동이 느릿느릿해 스태프들의 속을 끓이곤 하는데 반면 농땡이 칠 때는 비호와 같다고. <무사>의 김성수 감독은 “틈만 나면 숨어버리는 중국인 엑스트라 때문에 촬영이 몇 시간씩 지연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 <보리울의 여름>(위) ,<무사>(아래) | ||
그런데 제작비가 빠듯한 경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저예산 영화 <선택>의 제작진은 수감자 역을 맡을 엑스트라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역시 삭발이 필수였는데 모자란 제작비 탓에 ‘고가’의 출연료를 주기가 어려웠던 것. 결국 스태프들이 ‘안면’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홍기선 감독은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엑스트라를 부탁했더니 주위에서 나를 만나면 삭발당한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엑스트라들의 예상밖의 명연기에 스태프들이 감동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선 국화꽃으로 뒤덮힌 고 박정희 대통령의 운구차가 지나갈 때 이를 둘러싼 ‘시민’들의 사실적인 눈물 연기가 돋보인다.
이 장면을 맡은 엑스트라는 촬영지인 익산 인근 주민들로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노인들에게 우는 연기는 너무나 어렵고 생소한 일. 게다가 ‘지역감정’도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박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눈물 연기를 요구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그런데 막상 ‘액션’ 사인과 함께 운구차가 연도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문소리는 “단순한 우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 서럽게 우는 노인분들의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놀랐다”고 얘기한다. 영화가 지닌 마력이 두터운 지역감정의 벽까지 허물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