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회장이 죽기 전날인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울부짖으면서 내뱉은 말이다. 정치권에서도 성 전 회장을 친이계로 분류하기엔 어렵다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경선 때 박근혜 캠프를 도왔고, 2012년엔 선진당과 새누리당 합당을 주도하며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어찌 보면 박근혜 정부 개국공신인 셈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서초동에선 성 전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경남기업이 MB 정권 시절 역점 사업이었던 해외 자원개발에 참여한 것과 연관을 짓는 기류가 우세하다. 성 전 회장과 MB 정권 실세들 간 커넥션이 검찰 수사의 종착지였다는 얘기다. 이는 경남기업 자원외교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성 전 회장 개인 비리로 방향을 튼 대목만 봐도 알 수 있다. 타깃은 성 전 회장과 그 배후에 있는 MB 실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성 전 회장의 정치적 스탠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친박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핵심부가 성 전 회장을 ‘MB맨’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성 전 회장의 경우 친박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깊을 뿐 아니라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던 까닭에서다. 한 친박 의원은 “자신이 MB맨이라서 표적 사정을 당했다는 것은 성 전 회장 오해다. 다른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은 반 총장을 중심으로 한 신 야권연대의 밑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 전 회장과 가까운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성 전 회장이 ‘앞으로 총선과 대선은 친노로 힘든 것 아니냐’며 반 총장을 앞세운 야권 재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성 전 회장은 비노계, 중도 진영, 새누리당 소장파 등이 신당을 만든 뒤 반기문 총장을 옹립하면 ‘충청대망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야권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여권 핵심부로선 설령 성 전 회장이 ‘친박’임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행보가 그리 달가울 리는 없다. 더군다나 당시 반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주자 1위를 달리고 있던 터였다. 성 전 회장 역시 반 총장의 관계가 자신을 옭아맨 배경은 아닌지 죽기 직전까지 의심했던 모양이다. 성 전 회장은 기자회견 직후인 8일 측근에게 “반기문 때문인가”라고 되물었고, 9일 새벽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선 사정 대상이 된 이유에 대해 “반기문 쪽에 서서 그렇다는 보도도 나오고”라고 답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