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갖고 있는 많은 여학생들이 길거리 캐스팅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사진들은 압구정동 명동 등의 거리에서 여학생들에 접근해본 기자와 현직 캐스팅 매니저. | ||
문제는 이런 심리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고가의 학원비만 갈취하는 연예인 아카데미들이 급증하고 있는가 하면 연예인이 되는 과정이라며 여학생들을 강제 성추행하는 사건들까지 줄을 잇고 있다.
<일요신문>에선 연예계에 대한 여학생들의 동경과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자 기자가 연예인 캐스팅 매니저로 분해 길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길거리 현장에서 접한 연예인 지망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기자가 길거리 캐스팅을 위해 여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25일. 첫 번째 방문지는 길거리 캐스팅의 1번지로 꼽히는 명동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스타벅스 앞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이들은 실제 길거리 캐스팅에 한창인 캐스팅 매니저들이었다.
서너 명가량의 캐스팅 매니저들은 가만히 거리를 주시하다 괜찮은 여학생들을 볼 때마다 말을 걸었다.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은 뒤 명함을 주고 여학생들의 연락처를 받는 것이 이들의 업무.
그들 옆에서 기자도 캐스팅 매니저로 분해 눈에 띄는 외모를 소유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명동에서의 실패를 거울삼아 도전한 두 번째 지역은 연예인이 자주 모이는 강남의 압구정동. 이번에는 중고생이 아닌 대학생을 위주로 길거리 캐스팅에 도전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절반의 성공을 이뤄낸 대상은 지난 6월1일 오후 6시깨 대학교 2년생 이주언씨(가명·21)이었다.
이번에는 ‘영화사 캐스팅 디렉터’라고 신분을 감추고 “새로 들어가는 영화에 참신한 새 얼굴이 필요한데 오디션 한번 받아보자”는 제안을 던졌다.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곧 공개오디션이 있는데 꼭 참석해라. 감독에게는 먼저 귀띔해 두겠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이씨 역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
이런 반응에 기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취재 도중이라고 설명하자 이씨는 “만약 모델로 활동하기 위한 오디션을 받으라고 했다면 아마 응했을 것”이라며 “아르바이트로 모델을 하는 친구들이 여러 명인데 그들을 내심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모델의 경우 아르바이트 치고는 꽤 큰 돈을 벌 수 있어 좋다는 게 이씨의 설명.
기자의 길거리 캐스팅 현장 체험이 결국 성공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1년에 두 번 있는 고3 수험생들의 모의 수능이 치러진 이날은 대부분의 중·고생들이 학교를 쉬는 휴일이었다. 때문에 수많은 여학생들이 거리로 몰려 나왔다.
이날 오후 4시께 다시 찾은 명동. 이번에는 캐스팅 매니저에게 막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강희정양(가명·16)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선 방금 명함을 받은 길거리 캐스팅은 연예인 아카데미에서 수강생을 모으기 위한 호객 행위라고 설명하며 따라 붙었다. 그 뒤 기자는 “이미지가 너무 좋아 보인다. 카메라 오디션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면서 “오디션만 통과되면 전속계약을 하게 되고 그 뒤의 모든 비용은 우리가 댄다”고 밝혔다.
기자는 결국 신분을 밝히고 취재중이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강양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몇 차례 길거리에서 명함을 받고 오디션 보자는 제안을 받은 바 있다”면서 “하지만 당연히 오디션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극적인 제안은 처음이라 내심 기대가 컸었다고 고백했다.
자리를 옮겨 홍대입구역 부근에서도 수많은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걸어가는 고등학교 2년생인 김다희양(가명·17)에게 다가간 기자, 이번에는 유명 연예인 A양의 매니저라고 소개했다.
“코디네이터와 함께 의상 협찬 문제로 왔다가 우연히 봤는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며 “지금 A양이 곧 새 영화에 들어가는데 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갑작스런 얘기에 김양이 다소 놀라는 반응을 나타내자 옆에 있는 김양의 친구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김양을 부추겼다. 나중에서야 기자의 신분을 알게 된 그들은 당황해 하면서도 A의 매니저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단 일주일 정도의 경험이었지만 길거리 캐스팅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과 인기를 한몸에 받는 연예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여학생들은 약간의 감언이설에 쉽게 속아 넘어갔다. 어린 여학생들은 길거리 캐스팅은 연예인으로 향하는 ‘지름길’도 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수렁으로 빠지는 흙탕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