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연가>와 <올인>으로 일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최지우와 이병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병헌, 최지우, 차태현 등 한국 연예인들을 직접 보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너온 9백여 명의 일본 관광객들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등장한 한국 스타들을 향해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보냈다. 과연 그 무엇이 일본인들을 한국 연예계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일요신문>은 지난 6월23일부터 27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2004 한일우정주간 in 제주’ 현장을 찾아 한류 스타들과 일본 관광객들, 그리고 일본 관계자들을 통해 한류 열풍의 실체를 직접 확인했다. 특히 이병헌, 최지우, 류시원 등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류 열풍의 원인과 문제점, 향후 전망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6월23일 저녁 7시 반 제주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린 ‘이병헌 팬미팅’ 현장.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일본 관광객들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2004 한일우정주간 in 제주’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성실한 팬 서비스를 선보인 이는 단연 이병헌. 23∼24일 이틀 동안 머물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병헌은 “뜻 깊은 행사라고 여겨져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냈다”면서 “
이병헌은 한류 열풍의 근원으로 한국 배우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손꼽았다. 배우들의 노력하는 자세에 한국 시청자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듯 일본 시청자들도 열광한다는 것.
차태현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한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면서 “일본을 위한 별도의 준비보다는 지금처럼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한류 열풍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 류시원,차태현 | ||
“일본 방송은 버라이어티 쇼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드라마 제작에는 별로 공을 들이지 않는다”는 류시원은 “그래서 드라마 전성기를 그리워하던 일본 30~40대 주부들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차태현은 “일본 드라마는 절반 이상이 세트 촬영인 데 반해 한국의 미니시리즈는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라며 “갑갑한 세트 드라마에 질린 일본인들이 아름다운 배경과 어우러진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제작 과정에 들인 정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진 한국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한류 열풍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본 관광객 에미 무라마츠씨는 “눈빛 연기나 표정 연기 등 한국 배우의 연기력이 놀랍다”면서 “감수성이 뛰어난 한국 배우들의 연기가 일본 주부들의 정감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류시원은 이를 ‘우는 남자의 승리’라고 해석한다. 즉 울지 않는 일본 남자 배우에 익숙한 이들에게 한국 배우의 눈물 연기가 어필하고 있다는 것.
일본인 관광객들은 한국 배우들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줬다. “여자에게 헌신적인 한국 배우들에게 반했다”는 관광객 나가세 미호씨는 “남성적인 매력과 동시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겸비한 부분들이 한국 배우들의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23일 오프닝 세리머니에 참석한 일본 연예인 구로다 후쿠미 역시 “한국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에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면서 “강한 남성상에 감성 연기를 더한 것이 인기 요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렇게 일본 내 한류 열풍이 남자 배우 중심이기 때문에 이번에 방문한 관광객 역시 대부분이 여성이다. 하지만 행사 기간 도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여배우인 최지우였다. 일본 팬들 앞에서 생일 케이크를 자르며 생일 파티를 연 최지우에게 선물을 건네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만도 3백여 명이 넘었다. 최지우는 이들과 직접 악수를 나누며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런 폭발적인 인기에 대해 최지우는 “작품 운이 좋았고 상대 배우들이 좋은 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겨울연가>에서는 배용준의 연인으로, <아름다운 날들>에서는 류시원, 이병헌과 호흡을 맞췄고, 이번 행사에서 소개된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도 이병헌의 연인으로 나온다. 게다가 일본 지상파 방송인 후지 TV에서 방영될 예정인 <천국의 계단>에서도 여주인공이다. 결국 최지우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남자 배우 대부분의 연인 역할을 두루 경험한 연예인인 셈이다.
▲ 2004 한일우정주간 in 제주 | ||
다만 아쉬운 부분은 이런 한류 열풍이 일본 전체를 강타한 태풍이 아닌 한국 드라마 마니아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국지풍이라는 점이다.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들, 다시 말해 조금은 한가한 주부층으로 팬이 한정되어 있는 편”이라는 이병헌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관광객들 역시 대부분이 30~40대 주부들 위주였다. 그것도 주최측인 일본 위성방송 KNTV에서 모집한 한국 드라마 마니아들이었다. KNTV는 한국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위성방송이다.
다만 배용준의 경우 <겨울연가>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지상파를 타면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 폭풍 규모의 ‘욘사마 열풍’을 만들어 냈지만 이런 바람이 한류 열풍 전체로 연결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현지의 반응은 한류 스타들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욘사마’의 연인 최지우는 “<겨울연가>가 NHK에서 방영되기 전까지는 일본 길거리를 걸어도 20대들은 나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고 일부 주부들만 알아보는 수준이었다”고 털어놓았고 차태현 역시 “동남아시아에 갔을 때에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날 알아보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이번에 방문한 관광객들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친숙한 이병헌, 최지우, 류시원 등 ‘드라마 스타’들이 등장한 23∼24일과 그 이후의 행사 분위기는 판이하게 달랐다. 게다가 25일에는 절반 이상의 관광객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차태현, 전지현, 장혁 등 영화배우 위주로 진행된 25일 이후 행사에는 고작 3백여 명만 참석했을 정도다.
하지만 ‘욘사마’ 열풍이 뜨거운 지금이 한류 열풍을 일본 전역으로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때문에 이번 행사에 여러 편의 한국 영화들이 홍보 이벤트를 마련하고 톱스타들도 대거 참석한 것.
일본 매스컴 관계자들은 6월26일 일본에서 개봉된 <태극기 휘날리며>의 원빈, 지상파 중계 두 번째 드라마로 오는 11월 방영 예정인 <천국의 계단>의 권상우 등이 배용준만큼 인기몰이를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의 여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지적한다. 과연 한류 열풍이 일본 열도 정복에 성공의 ‘태극기’를 꽂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진정한 출발선에 선 그 ‘실체’는 이제 막 현해탄을 건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