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남자> | ||
김기덕 감독의 화제작 <나쁜 남자>에서 한기와 선화가 맺은 관계가 사랑인지는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다. 사실 한기가 선화를 자신의 곁에 두는 방식은 마음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지배와 피지배의 주종 관계라고 보는 편이 옳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지배와 피지배라는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동등한 사랑이란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남녀는 어느 정도 서로에게 양보를 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러운 권력 관계, 내지는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을 제도적인 장치로 조정한 것이 말하자면 결혼이다. 그런데 한기와 선화는 그러한 주종 관계의 시작을 강간이라는 폭력에서 출발시키고 있다.
강간은 사실상 남녀 관계에서 강제로 성 관계를 맺는다는 물리적인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성관계라는 것은 결국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권력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제로든 아니면 ‘작업’에 의해서든 성관계를 맺었을 때 남녀를 불문하고 성관계의 파트너에게 심리적 의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에서 강간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자 동시에 사랑 행위라는 이율배반적인 이미지로 동시에 그려져 온 게 사실이다. 종종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강간하려는 남자의 행동이 넘치는 사랑을 주체 못한 구애처럼 그려지는 것은 그래서다. 하지만 사실상 강간은 정신적인 살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쁜 남자>는 강간을 남성적인 시각에서 그린 노골적인 작품이다. 분명한 것은 <나쁜 남자>에서 등장하는 남녀 사이가 세상에서 사랑보다도 훨씬 더 자주 목격되는 관계라는 점이다. 사랑은 드물고 의존과 피지배, 지배와 권력 관계는 더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강간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형태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