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쫑파티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신인 배우들이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하지 못해 연출 스태프들과 묘한 마찰을 빚어오다 결국 울분에 찬 목소리로 술기운을 빌어 터뜨리는 거다. 그래서 어쩌라고!
연출 스태프들은 또 그들대로 할 말이 많다. 그러게 누가 연기를 못하라고 했나? 찍어야 할 분량은 많은데, 계속 NG를 내게 되면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 짜증이 나기 마련. 자연 NG를 낼 때마다 원망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신인 배우 입장에선 또 그게 한이 됐던 모양이다.
지금은 ‘중견’ 소리를 들으며 스크린을 강렬한 매력으로 달구고 있는 이미연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나 배우라고요. 알아요? 나 배우라구~!” 갑자기 탁자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스태프들은 놀래서 쳐다봤다. 1992년 MBC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황인뢰 연출)> 드라마 쫑파티 현장. 안타까운 목소리로 술에 취해 외치는 이미연을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
그녀에겐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라는 드라마가 너무 어려웠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그녀에겐 복잡 미묘한 주인공들의 심리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카메라 감독이 조용히 다가와 술을 한 잔 권했다. “이미연씨! 난 이미연씨가 훌륭한 배우가 되리라고 믿어.”
드라마 쫑파티 현장이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만 연출되는 건 아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아주 험악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맨 처음 시작할 땐 서로의 명성을 믿고 “형님, 아우” 하거나 “작가님, 감독님” 하며 아주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다가 드라마가 망하면 언제 봤냐는 듯이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드라마가 망한 탓을 서로에게 돌려 중간에 낀 연기자들을 아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쫑파티를 각각 따로 열어 어디로 가야 할지 그야말로 연기자들에게 강한 갈등 상황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럴 땐 알아서 처신하는 게 연기자들의 몫.
▲ 이미연 | ||
맨 처음 설정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문제 제기를 했던 그 PD는, 높은 시청률이라는 테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작가가 하자는 대로 하면서 무지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좀처럼 잡기 힘든 ‘높은 시청률’이라는 행운 앞에 서글픔을 느껴야 했던 남자.
여자 작가는 여자 작가대로 속상한 일이 많았다. 신인 작가가 처음으로 미니시리즈라는 커다란 작품을 맡게 되면서 이리저리 방송국의 높은 사람들에게 불려다니며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잔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과연 이 작품이 언제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세월 속에서 몇 개월을 버텼기 때문이다.
드디어 운명의 쫑파티 날. 둘 다 그렇게 모질지 못한 성격의 작가와 PD는 서로의 눈을 애써 피하며 출연진들과 성공리에 막을 내린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승자의 입장인 작가,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PD가 딱해 보여 2차를 제의했다고.
“나랑 다음에 안할 거예요?” 술을 시켜놓고 슬픈 노래를 부르던 PD, “다시는 안할 거예요…!” 라며 울더라고. 그 모습을 본 작가 역시 그동안의 서러움이 물밀 듯 몰려와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 장면을 찍어서 방송했으면 대박이 나지 않았을까?
드라마 쫑파티 현장이 눈물의 바다만 있는 건 아니다. 연분홍빛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피로연장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MBC 아침드라마 <성녀와 마녀> 제작진은 탤런트 김보연과 전노민의 감사를 받느라 드라마 쫑파티 현장이 완전히 그들의 결혼 피로연장이 됐다는 후문.
“선생님 너무 고마워요!” 김보연은 특히 <성녀와 마녀> 집필을 한 소현경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는 몸이 안 좋으니 되도록이면 야외촬영에서 빼달라는 특별 민원을 넣고서는 엉뚱하게도 전노민 촬영현장에 나타났던 것. 그러니 머리 쥐어 짜며 야외 촬영분을 빼준 소 작가에게 미안할 수밖에. 김보연은 자기 때문에 작가가 밤새 고생했을 것을 생각해서 잘 살겠노라고 맹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