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 | ||
<양들의 침묵>을 보면 연쇄 살인은 집착에서 시작된다. 집착의 대상이 되는 한 가지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게 될 때 연쇄 살인은 시작된다. 보통 연쇄 살인의 동기는 성적인 집착에 있는 경우가 많다. ‘버팔로 빌’처럼 여성의 하얀 피부에 집착하기도 한다. 1970년대 전 미국을 경악시켰던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는 여성의 고통 어린 비명 소리에 집착했다고 전해진다. 테드 번디는 백주대낮에 길 가던 여성을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고 태연히 사라질 만큼 대담했다. 테드 번디는 체포된 뒤 한 차례 탈옥에 성공하는데 도주중에도 여성을 연쇄 살인할 만큼 여성에게 집착했다. <양들의 침묵>에는 성적인 집착이 만들어내는 연쇄 살인의 광기가 배어있다.
성적인 집착은 ‘페티시’라고 불린다. 여성의 발에 대한 집착, 매니큐어 발라진 손톱, 하이힐, 마스카라, 머릿결, 가장 흔한 경우지만 풍만한 가슴에 대한 집착도 일종의 페티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범한 사람도 이런 종류의 성적인 페티시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영화를 보면 연출자가 지닌 성적인 페티시가 감지되는 경우마저 있다. 지난해 개봉한 한 한국영화에서는 사춘기 소녀의 청순한 발에 대한 집착이 비교적 또렷하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페티시가 지나치면 변태가 된다. 심하면 페티시의 대상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흔히 교복 입은 여고생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남성의 경우 이런 식의 페티시가 과도하게 표출돼 음란물에 몰두하기도 한다.
페티시의 범위를 다소 광범위하게 생각해보면 특정한 부위에 환락이 있다고 믿거나 아니면 과도하게 어떤 대상을 증오하는 것 역시 성적인 집착의 일종이다. 문제는 중독이든 증오든 일단 한 번 맛을 들이면 끊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건 인터넷 포르노 중독증과도 같다. 좀 더 천박하고 질펀한 섹스에 집착하게 될수록 쾌락은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양들의 침묵>의 ‘버팔로 빌’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갖고 싶어했다. 처음에 ‘버팔로 빌’이 선택한 방식은 성전환 수술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인 증상은 성전환증이라기보다는 페티시의 일종일 뿐이었다. 성전환 부적격 판정을 받자 그는 살인마로 돌변한다. 자신이 원하는 몸을 얻기 위해 여성을 죽이고 가죽 옷을 만들어 변신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의 생각과 행동, 삶은 집착의 연속이었다. 그는 거대한 집착이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역시 결국 거대한 핏빛 집착이었다. 유씨는 여성과 돈에 집착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좌절을 감당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집착을 증오로 바꿔 괴물이 됐다. 쾌락의 대상에 대한 집착은 이성과 감성과 영혼을 마비시킨다.
지형태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