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헤이리 인근의 모텔촌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서울 북악산의 팔각정, 경기도 하남의 미사리, 고양시 행주산성, 시흥시 오이도, 인천의 월미도.’
과거 불륜 커플의 데이트 장소 ‘톱5’로 꼽히던 장소다. 이 지역의 특징은 인적이 드물고, 주차 공간이 널찍하다는 점. 또 산이나 강, 바다와 인접해 있고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으며, 무엇보다 멀지 않은 곳에 모텔촌이 있다. 반면 불륜 데이트 장소로 이름이 나면서 중년 남녀가 손만 붙잡고 다녀도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때문인지 유부들의 데이트 장소가 달라졌다.
‘상전벽해’를 보인 대표적인 지역은 경기 하남시의 미사리다. 과거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줄지어 있던 조정경기장 앞 대로변은 가족단위의 외식 손님이 많이 찾는 식당으로 변모했다. 그나마도 조정경기장 앞 도로 700m가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사 중을 알리는 펜스로 가로막혀 있었다. 펜스 뒤편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고, 그 앞 일대 역시 상업시설과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과거 미사리는 데이트를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서울에서 미사리를 지나야 경기도 양평, 가평 등지로 나갈 수 있고, 강변이라 분위기도 좋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카페촌이 형성돼 밤샘 영업을 하며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에는 여전히 미사리 카페촌이 등장하지만, 실상 카페촌은 이미 수년 전 사라졌다. 진나 4월 28일 <일요신문> 취재진이 찾았을 때 곳곳에 폐업한 카페가 아직 헐리지 않고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영업 중인 라이브카페는 단 한 곳에 불과했다.
라이브 공연을 하진 않지만 빛바랜 외관을 지키고 있는 카페도 두 곳 정도 있었다. 과거에 성업했던 카페들은 내부 모습이 비슷했다. 소파 등받이가 높아 어디에 누가 앉아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먼지 낀 범선 외관을 한 S 카페에 들어서자 주인은 분주히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봤을 땐 손님이 한 테이블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대화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그마저도 음악소리에 묻혀 희미했다. 주인은 “이곳에서 15년간 장사했다.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추억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고 말했다.
S 카페 인근 R 카페 매니저 손 아무개 씨(33)는 “옛날에는 열이면 열 다 커플이었다. 그중 중년 남녀가 다정하게 오면 100% 불륜이라고 보면 됐다. 요즘은 80%가 가족단위 손님”이라며 “인근이 식당으로 바뀌면서 우리도 인테리어를 단장했다. 예전에는 카운터에 앉아서도 손님이 앉아있는지, 나갔는지 볼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한 구조였다. 큰 소파는 모두 버리고 젊은 감각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가게를 찾은 중년의 커플이 되레 바뀐 인테리어를 보고 나가기도 한다. “워낙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지다보니 불륜도 당당하게 저지르는 이들만 미사리를 찾는 것 같다. 슈퍼카를 끌고 나이 어린 여성을 데리고 오는 중년의 남성들은 오픈된 공간에서도 주눅 들지 않더라”고 손 씨는 귀띔했다.
서울 남동부에 미사리가 있다면 반대편인 북서부엔 파주가 있다. 파주 지역 역시 서울 인근 지역으로 교통이 좋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 오래 전부터 불륜의 ‘성지’로 손 꼽혔던 곳. 과거에는 임진각 일대에서 불륜 커플을 볼 수 있었다면, 요즘은 그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수년 전부터 통일동산 인근에는 모텔촌이 형성돼 성업 중이다. 임진각 뒤편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평화누리공원이 조성돼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을 찍으러 파주 일대를 종종 찾는다는 한 남성은 “늦은 시간에 평화누리공원 주차장에 가면 김이 서린 자동차를 볼 수 있다. 처음 파주를 찾았을 땐 외딴 곳에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들이 있어 의아했는데, 인근 모텔이 환하게 불을 밝힌 걸 보고 이해가 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불륜 커플들 사이에서 뜨는 핫 플레이스는 탄현면에 위치한 헤이리 예술마을. 아담한 동네 곳곳에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젊은 사람들의 숨은 명소다. 그런데 유명세를 타면서 임진각 등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유부들이 몰려왔다.
수도권 북동부 불륜의 메카는 포천이다. 포천시 소흘읍에 있는 광릉수목원에서 고모리 저수지로 이어지는 길목이 불륜 커플들에게 최적화된 곳. 수목원에서 고모리 저수지로 향하는 길 가운데는 모텔촌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저수지 인근에는 장어, 오리 등 건강식을 파는 식당이 펼쳐져 있다. 저수지 안에 있는 오리배 체험은 커플들의 필수 코스다. 과거에는 이 일대도 카페촌을 이뤄 데이트 장소로 이름이 높았지만 지금은 쇠락했다.
요즘 ‘유부’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시흥시 물왕저수지(위)와 의왕시 백운호수.
서부권에서 떠오르는 곳은 ‘아라뱃길’이다. 과거 인천 지역 불륜 명소인 월미도는 여전히 중년 커플을 자주 볼 수 있지만, ‘뭘 좀 아는’ 커플은 아라뱃길을 찾는다. 자전거길이 정비가 잘 돼 있고, 밤에는 야경 또한 볼 만하다. 평일 낮에는 자전거를 타다 눈 맞은 중년 커플들이 함께 라이딩을 즐기거나, 그늘막이나 텐트를 가져와 한낮에 낯 뜨거운 스킨십을 하는 커플도 부지기수다. 가족과 함께 아라뱃길을 찾은 적이 있다는 이 아무개 씨(40)는 “두 돌 된 딸을 데리고 나갔는데 민망해서 눈을 둘 데가 없더라. 중년 남녀가 그늘막을 치고 누워서 허벅지 만지고, 안고 별 짓을 다하더라”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인천 아라뱃길 두리캠핑장.
과거에는 불륜 커플이 특정 지역만 찾아 데이트를 즐겼다면, 요즘은 장소 불문이다. 배우자의 눈에만 띄지 않는다면 번화가도 거리낄 것 없다. 서울 신촌, 강남 등지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몰린다는 점을 역이용해 데이트를 즐기는 중년도 많다. 대학생 하 아무개 씨(27)는 “신촌 모텔촌에 가면 대학생들이 집에 돌아가는 저녁 시간에 모텔로 들어가는 40~50대 남녀를 많이 볼 수 있다. 요즘은 정말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아무개 씨(28)는 “얼마 전 공부하러 서울 강남에 있는 북카페에 갔는데 옆에 중년 커플이 마주보고 앉았다. 다들 공부하니 소리 내서 대화는 하지 못하고 ‘몸의 언어’로 데이트를 즐기더라. 수더분하게 생긴 여성이 하이힐을 벗더니 발로 남자 다리를 쓸어내리며 유혹했다. 신경 쓰여서 공부를 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미사리 카페촌, 퇴락한 까닭 ‘보금자리’ 들어서자…‘중년의 놀이터’ 철수 ‘엉클톰, 허클베리핀, 전인권클럽….’ 1990년대 ‘좀 놀았다’는 이들은 익숙한 미사리의 대표적 라이브카페들이다. 미사리 카페촌이라는 이름으로 군락이 형성될 정도로 1996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라이브카페는 인기가 높았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서 팔당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100개 가까이 들어서 있던 카페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이 들어찼다. 카페 앞 도로에 늘어선 자동차를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며 정리하는 주차요원들의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음료 값을 두세 배 높여 받아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4월 28일 카페촌으로 유명했던 미사리의 한 라이브카페 건물이 업종변경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 아래는 라이브카페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음식점 간판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미사리 라이브 카페의 인기가 한풀 꺾인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미사리 일부 지역이 2009년부터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선정돼 성업하던 카페들이 문을 닫고 나가야 했다. 미사리에 20년 넘게 살았다는 한 주민은 “문 닫을 때까지 장사는 잘 됐다. 주택지구로 지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도에는 여전히 ‘허클베리핀’, ‘라이브전인권’ 등의 가게가 표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남아있는 라이브 카페는 ‘열애’ 한 곳이다. 인근에서 영업하던 카페 ‘로마’는 수개월 전에 문을 닫았다. 열애와 ‘쉘부르’를 운영하고 있는 오 대표는 “미사리가 불륜 장소로 ‘찍힌’ 데는 서운한 점이 있다. 40, 50대 손님들에게는 추억을 새길 수 있는 ‘중년의 놀이터’이기 때문이다”며 “나라도 남아서 가수들에게는 무대를, 손님들에게는 추억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 |
불륜 커플 감별법 화장 곱게 하고 산에 가면 딱! 불륜이 워낙 흔해진 탓에 일반인들은 한눈에 봐선 사이좋은 부부인지, 불륜인지 가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서울 근교에서 영업하며 ‘노하우’를 쌓은 식당 주인들은 딱 보면 ‘사이즈가 나온다’고 말했다. 자리에 앉을 때도 불륜 커플의 경우는 여성이 입구에서 등을 돌리고 앉는다. 말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조용조용히 대화를 꾸준히 이어가며 식사를 한다. 반찬이 떨어져도 더 달라고 잘 얘기하지 않는다. 또 식당에 있는 TV를 보며 말없이 식사하는 커플은 부부다. 불륜의 경우 서로 물과 수저를 챙겨주고, 반찬도 얹어 주는 등 조용하지만 다정한 모습이다. 박 씨는 “계산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부의 경우 경제권을 쥔 여성이 카운터로 가 계산을 한다. 불륜 커플은 남성이 계산하고 여성은 가능하면 식당 주인에게 얼굴도 비추지 않고 조용히 신발을 신고 나간다”고 설명했다. 도심지역 불륜의 온상으로 꼽히는 산에서도 부부 등산객과 불륜 등산객은 명확하게 표가 난다고 등산동호인들은 설명한다. 한 포털사이트의 등산동호회 카페에는 회원들의 ‘불륜 커플 감별법’ 노하우가 다수 올라와있다. “여자가 땀이 많이 날 것을 알면서도 화장을 곱게 한다”, “얼마 올라가지 않고 하산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또 “부부의 경우는 배낭을 하나만 메고 오지만 불륜은 각자 들고 온다”, “좁은 등산로에서도 붙어 가려 한다”는 등의 설득력 있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 부부의 무뚝뚝한 관계 때문인지 ‘지나치게 다정하면 불륜’이라는 공식이 통용되고 있다. “부부는 남편이 먼저 올라가서 늦게 올라오는 아내를 구박한다”,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쉬엄쉬엄 올라가는 남녀는 불륜이다”는 등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얘기도 회원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요즘 불륜 커플들은 해외여행도 거리낌 없이 나간다. 아시아 여행 가이드들의 모임인 한 사이트에는 가이드들의 불륜 커플 감별법이 올라왔다. 한 가이드는 “불륜은 단체행동에서 빠져 호텔에서만 지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이드에게 100달러짜리를 찔러주며 ‘우리 좀 그냥 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동하기 위해 버스만 오르면 잠이 든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또 다른 가이드는 “여기선 비아그라나 시알리스를 살 수 없느냐”고 묻는 남성도 있다고 적었다. 자신을 중국 가이드라고 밝힌 이용자는 “여행 내내 요란하게 스킨십을 하는 중년 커플이 있었다. 하루는 한식당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여성이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 벌써 여행한 지 3일째였지만 태연하게 ‘어제 도착해서 놀고 있다’고 말하더라. 이후에 커플은 유독 조용히 따라다니다가 귀국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