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방송국에서 이동중인 코디네이터 등 연예 관계자들. | ||
수십 벌의 의상을 들고 방송국 이곳저곳을 활보하는 연예인 코디네이터.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이들의 고민은 대부분 유행을 선도하는 결정적인 선택이 되곤 한다. 코디네이터의 고민 끝에 결정된 의상이 연예인을 통해 유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제는 코디네이터들의 영향력이 우리 사회의 패션 경향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시되고 있다는 얘기다.
너무 야하다는 비난에 휩싸인 <풀하우스>의 한은정이 입은 란제리 패션이 청담동이나 명동 일대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고, 인기 드라마마다 패션 경향을 분석하는 기사가 각종 매스컴에 넘쳐난다.
연예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유행을 선도하는 연예인 코디네이터. 이들의 24시간을 뒤따라 가본다.
요즘 아침드라마와 시트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 MC까지 전혀 다른 세 장르의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조미령의 매끄러운 방송을 위해서는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다양한 의상과 패션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
오전 10시경 촬영 스케줄에 맞춰 미용실을 찾은 조미령이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코디네이터인 강민경씨는 이날 필요한 의상 정리에 정신이 없다. 우선 촬영 스케줄과 대본을 살펴본다. 대본에 따라 각각의 신에 따라 필요한 의상을 분석하고 촬영 스케줄에 따라 필요한 의상을 구분해서 정리해둔다.
더욱 중요한 업무는 의상 컨셉트를 잡는 것. “현재 세 프로그램 모두 캐릭터에 맞는 의상 컨셉트가 결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대본에 맞게 의상만 준비하면 된다”는 강씨는 “새로 시작하는 작품의 경우 배우가 캐릭터 분석에 애를 먹듯이 코디네이터들도 캐릭터와 연기자에 모두 어울리는 의상 컨셉트를 결정하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의상 컨셉트를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캐릭터와 연예인의 특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다. “캐릭터보다 배우에게 더 중점을 두는 편”이라는 강씨는 “물론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몸매와 스타일에 어울리는 데 초점을 맞춰 배우가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신경 쓴다”고 설명한다.
취재 결과 대부분의 코디네이터들이 캐릭터보다 배우의 특성을 더 중시하는 걸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간혹 배우들의 튀는 의상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배우의 메이크업이 끝나는 12시경 코디네이터 준비도 마무리된다. 보통은 코디네이터가 촬영 현장에 동행하지만 가끔은 어시스트(보조 코디네이터)만 보내고 본인은 의상 준비를 위한 별도의 스케줄을 잡는다.
<풀하우스>에서 란제리 패션을 선보이며 화제의 주인공이 된 한은정의 코디네이터 남주희씨는 요즘 청담동을 돌아다니느라 바쁘다. 드라마 초반에만 해도 협찬이 어려웠던 명품 브랜드 관계자들이 최근 들어 앞다퉈 의상 협찬을 제안해오고 있기 때문.
“협찬을 통해 의상을 준비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간혹 구입하기도 한다”는 남씨는 “구입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간혹 의상을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 코디네이터들은 부티크가 즐비한 청담동을 자주 찾는다. | ||
자체 제작의 경우 코디네이터는 대략의 디자인을 준비한 뒤 거기에 필요한 원단과 부자재를 구입, 전문적인 제작 업체에 넘긴다. 나래패션, L&S 등 연예인 의상 제작 업체들은 코디네이터가 제공한 디자인과 컨셉트를 바탕으로 최종 디자인을 완성, 해당 연예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의상을 제작해준다.
최근 MBC 주말극 <사랑을 할거야>에 출연중인 장나라의 촬영 현장을 지키는 코디네이터 김영미씨. 연기에 몰두하는 장나라만큼이나 김씨도 모니터 화면에 빠져있다.
“현장에서 코디네이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모니터링”이라는 김씨는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는 것을 다듬어 주는 단순 업무부터 의상 컨셉트가 화면을 통해 잘 나타나는지 점검하는 일까지 모두 코디네이터의 몫”이라고 설명한다.
촬영 내용에 맞춰 디자인부터 색상까지 세심한 배려를 통해 준비된 의상이지만 현장에서의 돌발 변수를 꼼꼼이 체크할 수밖에 없다. 조명에 따라 달라 보이는 색감부터 의상의 화면발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
뿐만 아니다. 연기자와 친분이 두터운 코디네이터의 경우 연기에 대한 지적부터 메이크업까지 연예인의 모든 부분을 모니터링한다. 메이크업은 보통 단골 미용실에서 받은 뒤 촬영장에 온다. 하지만 촬영이 계속되면서 메이크업을 손봐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경우 코디네이터가 메이크업까지 다듬어준다.
김씨는 “현장에서 배우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비주얼적인 모든 부분을 점검해주는 게 코디네이터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깊은 밤이 되어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면 코디네이터와 연예인의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연예인과 코디네이터는 사적인 시간도 함께 보낼 만큼 친분이 깊다.
이제니의 코디네이터인 서봉채씨는 취미 생활까지 바뀐 경우.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서씨는 이제니의 계속된 권유로 인해 이제는 레저 스포츠 마니아다. 특히 웨이크보드와 스노우보드를 즐기는 편이다.
이제니와 서씨는 <남자 셋 여자 셋> 당시부터 호흡을 맞춰온 오랜 파트다. 이제니가 매니저 없이 활동할 당시에는 서씨가 매니저 역할까지 소화해냈다. 지난 2001년 이제니가 장염으로 입원하자 ‘음독 자살설’이 나돌아 기자들이 몰려든 현장에서 온몸으로 기자들을 막아낸 주인공이 바로 서씨였다. 서씨는 “제니가 새로운 소속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만큼 요즘에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좀 줄었지만 여전히 절친한 언니 동생 사이”라고 설명한다. 서씨는 이제니보다 네 살 연상이다.
코디네이터의 위치는 늘 화려한 스타의 뒤쪽이다. 그들의 모습은 스포트라이트 뒤편 어두운 곳에 존재하지만 이들이 있기에 스타들은 더욱 빛이 난다. 요즘 들어서는 패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코디네이터가 유망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공인의 의상을 책임지는 담당자로서 좀 더 높은 책임감이 아쉬울 때가 있다. 한국 패션산업 발달에 장벽이 되는 해외 명품 브랜드에 대한 집착과 극중 캐릭터가 무시된 지나친 치장 등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화면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화면 밖에서 ‘큰손’으로 부각되는 직업이 바로 연예인들의 코디네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