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닥터스의 의료봉사 실시 모습.
[일요신문] 네팔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재단법인 그린닥터스가 현지상황을 전해왔다.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게 요지다.
부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긴급의료구호단체 그린닥터스의 ‘네팔 지진 의료봉사단’(단장 정근)이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 지난 2일 밤 10시경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3일부터 시작될 의료봉사 일정을 의논하기 위해 봉사단원과 현지 선교단체 관계자들이 밤 12시까지 긴급회의를 실시했다.
현지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수도 카트만두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의료봉사단은 3일 아침 카트만두에서 북동쪽, 차로 1시간 30분 걸리는 사쿠 지역으로 첫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그린닥터스에 따르면 의료진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백 명의 주민들이 의료 캠프로 몰려들었고, 준비해 간 장비는 쉴 사이 없이 환자를 돌보고 의약품을 나눠 주는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군인들에게 임시로 빌리 천막을 병원삼아 맨바닥에 임시로 천을 깔고 앉아서 환자를 진료했던 그린닥터스 의료진은 수많은 재난현장에 가보았지만 이렇게 열악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특히 도착 3일째인 4일에는 오전 7시(현지 시각)에 네팔 북동부 신두팔촉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동북쪽으로 차로 4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신두팔촉은 이번 네팔 대지진 참사의 최대 피해지역이며 진앙지와 가까운 지역으로 여진의 위험이 잔존하는 곳이었다.
현재까지 신두팔촉 지역 사망자는 2천838명으로 알려졌으며 네팔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곳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지만, 현지인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척박한 산간지대라 구호단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아직 많았다.
지진으로 진입이 쉽지 않아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신두팔촉에서도 오지 마을인 게우라니에 도착한 의료봉사단은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300여 가구가 산다는 이 마을은 대지진 후 성한 가옥이 하나 없었다.
현지 주민은 이 마을에서만 지금까지 35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아직 잔해에 묻혀 있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다고 전했다.
그린닥터스 봉사단원들이 도착하자 주민들은 지진 발생 후 처음으로 구호팀을 보게 됐다며 기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공터에 임시로 천막을 세우고 전기 공급이 되지 않아 겨우 공수해간 발전기로 의료장비를 가동시켰다. 의료진이 자리하기도 전에 이미 수백 명의 주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날 그린닥터스 의료진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치료에 엄두를 못 내고 있던 마을 주민 300여 명을 진료했다.
이날 치료를 받은 수실라 기리(10·여) 양은 무너진 잔해에 맞아 이마에 상처가 나고도 9일이 지나서야 그린닥터스 의료봉사단을 만나 7바늘을 꿰매는 긴급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청년 4명에 의해 천에 감싼 채로 들려온 한 80세 여성은 이날 치료를 받고 두 발로 걸어 귀가했다.
기리 양의 수술을 집도한 온종합병원 최경현 진료원장은 “간단한 수술은 현장에서 바로 실시할 수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부상이나 상처를 입은 주민들이 많다”며 “세계 각국에서 여러 의료봉사 단체가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구호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나부터 의료봉사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환자들을 돌볼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그린닥터스 정근 단장은 “오가는 시간만 10시간이 넘으며 단 1분도 쉬지 못하고 환자를 돌봐야하는 고된 봉사다. 하지만 아직도 심각한 네팔의 현실을 보면 가는 날까지 우리의 손길을 필요한 곳에 마지막 1명의 환자까지 돌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린닥터스는 7박 8일간의 의료봉사 일정을 마치고 오는 8일 밤 11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한편 네팔은 6월부터 9월 사이에 연중 강수량의 80% 이상이 집중되는 우기를 앞두고 있어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과 전염병 창궐이 예상돼 현지 주민들의 더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