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경력 20년의 다재다능한 배우 이재은이 누드 촬영을 해 화제가 되고 있다. 몰라보게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이재은은 스물다섯의 재기발랄함에 성숙함과 다정다감함까지 갖춘 여인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9일 이른 아침부터 이재은은 덕수궁 근처 정동극장에서 EBS 미니시리즈 <명동백작>을 촬영하고 있었다. 점심께가 되어서야 머리를 매만지고 의상을 갈아입고 나타난 이재은은 몰라보게 날씬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물론 ‘빼놓을 수 없는’ 누드에 관한 얘기에 앞서, 이재은이 <명동백작>에서 전혜린을 연기한다는 것에 기자는 귀가 더 솔깃했다. 시대의 우상이었던 천재작가 전혜린이 아니던가. 서른 둘 젊디 젊은 나이에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오는 11일부터 방영되는 <명동백작>은 1950~60년대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봉구 박인환 김수영 등 문인들의 삶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한다.
“정하연 작가께서 정말 멋진 여자라며 전혜린을 소개해주셨어요. 저는 전혜린에 대해 몰랐지만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유명한 분이더군요.”
어딘가 전혜린과 닮은 느낌이라고 말하자, 이재은은 “어머, 그래요? 전혜린 작가는 ‘잘생겼다’는 느낌이던데요. 한편으론 남성답기도 한, 참 서구적이고 멋진 외모를 가지셨더군요”라고 답했다.
다양한 재능과 끼를 가진 이재은이지만, ‘노랑머리’로 변신했던 그녀의 선택은 파격이었다. 물론 이미 지난 얘기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재은과 영화 <노랑머리>를 함께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 그렇담, 누드집을 찍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었느냐는 질문은 그녀에겐 ‘아마추어적’인 것일까.
▲ <명동백작> | ||
이재은은 처음 찍은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진해서 재촬영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밝혔다.
“제가 누드집을 찍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아름다운 ‘선’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예전 중세 그림 속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잖아요. 배도 나오고 엉덩이도 크고 어찌 보면 뚱뚱한 모습인데도 그게 아름답잖아요. 몸을 가리는 것보다 그렇게 여성의 아름다운 라인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촬영하자고 했죠.”
이렇듯 누드촬영에 적극적이었으면서도, 이재은은 제작사와 서비스업체 관계자에게 “제작발표회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발표회를 한다면 홍보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재은은 그와 같은 형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맏딸인 이재은은 ‘저, 너무 효녀인 것 같아요’라며 잠깐 부모님 얘기를 꺼냈다. “부모님들이 절 너무 예뻐하셔서 시집도 안 보내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웃음). 아빠는 그러세요. 한 3층짜리 집 지어서 저랑 동생 시집장가 보내면 한층씩 들어와 살라고. 아이고, 참(웃음).”
이렇듯 여유 있는 이재은도 연예계 데뷔 20년 동안 힘든 때도 많았다. 내내 발랄했던 이재은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 넘어가는 중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때 얼굴에 여드름도 많이 나고 살도 많이 찌고 그러잖아요. 너무 속상했죠. ‘이러다 연기생활 끝나는 거 아닐까’하고. <노랑머리> 찍었을 때도 일부에서 보내는 비난의 목소리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죠(웃음). 그때 시트콤 <논스톱>도 찍을 때였는데 홈페이지에 누가 ‘요즘엔 창녀도 드라마에 쓰세요’라는 식의 글을 올렸더라구요. 그때 받은 상처로 인해 이후엔 인터넷에 아예 들어가 보지도 않아요.”
상처가 아물어 내공이 된 덕일까. 이재은은 이제는 웬만한 일엔 굴하지 않을 자신과 뚝심이 있는 듯했다. 말 한마디에도 사람이 느껴진다는데, 그는 또래보다 성숙했고 여느 연예인보다 정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