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태왕사신기>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김종학 PD(오른쪽)와 송지나 작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일본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인기 드라마를 영화화한 작품들이라는 점.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시스템이지만 인기 드라마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제작발표회를 가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김종학 PD가 드라마와 영화의 동시 제작을 천명함으로써 이러한 분위기가 비로소 현실이 됐다.
연예계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특정 분야가 전성기를 누리면 다른 분야가 약간 숨을 죽이고 어느 순간 견제에 들어간다. 최근에는 영화계가 단연 최고의 전성기다.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전성기를 구가해오던 가요계가 음원 불법 공유로 치명타를 입은 뒤 연예계의 흐름은 영화계가 주도하게 됐다.
이런 영화계의 독주에 최근 방송계가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영화 제작비를 훨씬 능가하는 제작비를 투여, 드라마의 품질을 높이는가 하면 고액의 출연료를 바탕으로 영화배우들의 ‘여의도 U턴’을 이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계의 영향력은 방송계를 넘어서고 있다. 시청률을 바탕으로 한 방송계의 수익 구조는 영화판에서 터지는 대박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하다. 영화배우들의 여의도행 역시 ‘이사’ 수준이 아닌 ‘외도’ 정도로 드라마에 한 편 정도 출연한 뒤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 김종학 프로덕션을 통해 달라질 전망이다.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를 주축으로 한 김종학 프로덕션은 <대장금>의 이병훈, <풀하우스>의 표민수, <올인>의 유철용 등 스타 PD와 최완규, 민효정 등 인기 작가들이 소속된 대형 외주 프로덕션이다. 최근에는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장진 감독마저 김종학 프로덕션에 합류했다.
▲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의 작업이 본격화되면 영화 (위)<올인>, <모래시계>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 ||
이 작품은 중국 수출을 포기하고라도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시대를 그려낼 전망이다. 지난 1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우리가 배운 역사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힌 김종학 PD는 “한민족이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광활한 삼국 시대를 그려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제작비는 밝히지 않았지만 김 PD는 “지금까지 여타의 드라마에 투입됐던 제작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방영 시점을 1년 반 정도나 남겨둔 상황에서(2006년 초 방영 예정) 제작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문제는 <태왕사신기>가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로도 동시에 제작된다는 점. 김 PD는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개념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드라마와는 또 다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 규모는 <반지의 제왕>을 넘어서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 약속이 실현된다면 한국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는 충무로가 아닌 여의도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외주 프로덕션 가운데 가장 선두업체인 김종학 프로덕션이 ‘드라마-영화 동시제작’을 선언한 이상, 이런 분위기는 금세 업계 전체로 확산될 전망이다. 방송국 PD 출신인 영화감독의 증가 역시 이런 흐름을 대변한다. 최근 개봉한 <돈텔파파>가 대표적인 경우. 연출을 맡은 이상훈 감독은 KBS와 SBS에서 예능국 PD로 잔뼈가 굵은 스타 PD 출신. 현재는 PD들이 소속 프로덕션에서 나와 영화사에서 영화를 연출하는 상황이지만 곧 소속 프로덕션에서 영화까지 만드는 시대가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분위기에 대한 충무로는 우려의 소리를 내고 있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시스템을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여의도의 충무로 침공이 이미 선전포고의 단계를 지나 상륙 작전을 개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