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기자가 찾아간 의정부 MBC 드라마 세트에선 현재 마니아층으로부터 두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일랜드> 촬영이 한창이었다. 이날 촬영은 중아(이나영 분)와 재복(김민준 분)의 관계를 강국(현빈 분)이 눈치채는 장면으로 이나영 입장에서는 고도의 감정 연기가 필요한 대목. 촬영장으로 향하는 이나영은 사뭇 긴장된 표정이었다.
원래 이날 인터뷰는 성사되기 어려웠다. 촬영중에는 너무 예민해져 있어 인터뷰가 힘들 것 같다는 이나영의 매니저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 그래도 기다려 보기로 하고 이나영의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촬영은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이나영의 매니저는 이나영의 건강을 걱정하며 그녀 특유의 집중력을 높이 평가했다.
“오늘처럼 감정 연기가 필요한 날은 하루 종일 단 한마디도 말을 안 할 정도로 배역에 몰두하는 편이다.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촬영하는데 다행히 체력이 좋아 큰 걱정은 없지만 오늘처럼 감정 연기가 있는 날은 밥도 먹지 않고 작품에 집중하는 터라 행여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이다.”
이나영이라는 배우가 드라마 속 캐릭터로 표현되기 위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소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다행히 예민해져 있던 이나영은 촬영 과정에서 다소 여유를 되찾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인터뷰가 가능해진 것. 의정부 세트 분량이 마무리되고 다음 야외 촬영을 위해 이동하기 직전에 인터뷰가 진행됐다.
“많은 망설임 끝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네 멋대로 해라> 후속편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 때문에 아직도 마음 고생이 심해요”라는 이나영은 “결국은 인(정옥) 언니에 대한 믿음으로 출연하게 됐지요”라고 얘기한다.
결국 이나영에게 가장 큰 부담은 <네 멋대로 해라>의 ‘경’이를 벗어나는 것. 코믹 연기에 도전했던 <영어완전정복> 때를 제외하고는 늘 이런 지적이 그를 뒤따랐다. 영화 <아는 여자>에서도 그랬고 독백이 많고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중아’ 역시 ‘경’을 닮아있다.
“사실 <아일랜드> 에 출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확실한 연기 변신을 선보이고 싶어서였어요”라는 이나영은 “중아와 경이는 사고방식이나 스타일, 말투 등이 전혀 다른 캐릭터에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작가 언니의 얘기에 믿음을 가졌고 촬영을 거듭하며 중아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등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이나영의 헤어스타일은 올 가을 최고의 유행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지난 8월2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기자들의 집중된 질문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파리의 연인>에 등장하는 ‘신데렐라형 캐릭터’의 도전 여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 때 이나영은 “신데렐라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라고 분명히 얘기한 바 있다.
이나영은 사실 인기에 비해 너무 조용한 편에 속한다. 그 흔한 열애설 한 번 없었을 정도인데다 별다른 루머에 휘말린 경우도 없다. 그만큼 연기 이외의 부분은 많이 가려져 있다는 얘기.
이런 지적에 대해 이나영은 “내가 조금 애늙은이 같아서 그런가봐요”라고 얘기한다. 그다지 외출을 즐기지 않는 편인 이나영의 취미는 독서와 DVD 보기. 주량은 ‘술자리 분위기는 맞출 수 있는 정도’라는 이나영의 술친구는 대부분 서른을 넘긴 노처녀 선배들이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친해진 선배들과 지금도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것. 대부분 이나영보다 5~6세 연상인 30대 언니들로 12세 연상의 띠 동갑도 있다. 이런 선배들과 함께 ‘소주방’이나 ‘오뎅바’ 등에서 가볍게 술을 즐기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고.
“매스컴에서는 저를 신세대를 대표하는 연예인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시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라는 이나영은 “사실은 보수적이고 내성적인데다 잘 놀지도 못하는 편이에요”라고 자신의 성격을 설명한다.
인터뷰를 마친 이나영은 다시 야외 촬영 장소로 떠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인터뷰할 때의 자연인 이나영은 이미 모습을 감추고 ‘중아’로 돌아와 있었다. 이나영이 차에 타자마자 가장 먼저 잡은 건 대본. 당분간 이나영은 ‘중아’에 중독된 채, 그렇게 이 시린 가을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