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도소리> | ||
로망포르노는 1971년 도산한 니카츠의 재건책으로 등장했던 ‘저예산 에로영화’를 의미한다. 16mm 필름 에로물인 ‘핑크무비’와 양대 산맥을 이뤘던 로망포르노는 80년대 중반 모자이크 처리된 실연 포르노인 어덜트비디오(AV) 전성기가 도래하며 쇠퇴했다.
로망포르노의 노출 수위는 비록 한국 에로 비디오 수준이지만 실험정신과 리얼리즘이 에로와 어우러진 특이한 매력이 돋보인다.
총 46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이번 제1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는 로망포르노의 국내 최초 상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도 한두 편을 이벤트 개념으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상영작 대부분이 로망포르노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주요 작품들을 통해 일본 로망포르노의 흥망성쇠를 살펴볼 수 있다.
여배우들에게 대사보다 육체로 연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은 초기 로망포르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71년작 <놀이>에 출연한 여배우 세키네 케이코 역시 혀 짧은 발음의 불충분한 대사가 껄끄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성숙한 소녀의 육체를 통해 발산하는 젊음의 에너지만큼은 30년이 지난 지금 보기에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 일본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일본 로망포르노 영화들로, 위부터 <신주쿠 문란한 거리> <미친 과실> <놀이>. | ||
로망포르노는 78년,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한다. 같은 해 개봉된 <엠마누엘부인>이 로망포르노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 78년 개봉된 고누마 마사루 감독의 <방황하는 연인들, 현기증>은 기존 로망포르노가 사도-마조히즘(SM)과 심미적인 환상 영화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1978년 나타난 로망포르노의 또 다른 변화는 정념의 세계를 묘사하는 ‘성인작품’ 위주의 흐름에 밝고 코믹한 영향의 ‘젊은 노선’이 가미된다는 점.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영화로는 오하라 코유 감독의 <복숭아엉덩이 아가씨>가 손꼽힌다.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당시 일본의 젊은 여성들을 열광케 한 잡지 <앙앙>과 <논노>에 의해 형성된 ‘앙앙족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78년 전환기 이후 니카츠 로망포르노의 중심 인물로 떠오른 이는 단연 네시로 기타치로 감독. 그의 대표작인 81년작 <미친 과실>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데 80년대 초반 도쿄라는 대도시의 이면을 통해 시대적인 분위기를 훌륭히 그려내고 있다.
로망포르노는 어덜트비디오(AV)의 전성기가 도래하며 위축되기 시작해 니카츠가 로망포르노 제작을 중단한 1988년, 일본 영화계의 무대 뒤로 사라진다. 하지만 90년대 이후에도 로망포르노 계보를 잇는 영화들이 종종 만들어졌다.
유부녀와 젊은 남자의 자극적인 해변 정사신으로 시작하는 사노 가즈히로 감독의 91년작 <파도소리>는 청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 성향으로 로망포르노의 계보를 계승했고, SM 클럽의 여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의 94년작 <사랑의 신세계> 역시 로망포르노의 성향을 따르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대한 또 다른 관심사는 상영작이 비디오나 DVD로 출시될지 여부다. 일본 성인물의 경우 극장 개봉작에 한해 비디오 출시가 가능한데 이번 상영작들은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국내 시장 여건상 로망포르노는 극장 상영보다 비디오 출시가 더 큰 여파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홍보를 맡은 프리비전 측은 “주최가 비영리단체인 일본 문화청이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으로 비디오를 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반응이 좋으면 소장용 DVD 출시는 가능할 것도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