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연가> 출연 당시의 배용준. | ||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후유노 소나타>를 보는 시청자들도 NHK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업주부층인 아줌마들이었던 것.
아줌마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시간을 지켜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가 하면, ‘진짜 일본인 맞아?’ 할 정도로 방송국에 전화를 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 얌전한 전업주부 일본 아줌마가 드라마, 그것도 평소 그토록 싫어하는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감동해 소감을 말하기 위해 방송국에 직접전화를 건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났다.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드라마를 왜 이제 방영하느냐, 진짜 한국 드라마 맞느냐, 한국을 다시 보게 됐다, 이제부터 괜히 한국사람이 좋아졌다 등등 그 반응도 칭찬 일색이었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NHK가 한 일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그러자 NHK는 재방송을 결정했고, 마침내 일본 메이저 매스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같은 관심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세 번째 지상파 방송을 한 달 앞둔 4월 초의 배용준의 방문.
이때는 이미 배용준이 일본 언론에 ‘지존의 욘사마’란 명칭으로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바로 이때 배용준의 일본 방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것만큼이나 일본열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당시 하네다 공항이 마비될 정도로 일본 전국에서 아줌마들이 몰려 들었다. 축구 스타 베컴이 기록한 1천2백 명의 공항 환영인파 기록도 배용준이 7천 명으로 간단히 갈아치웠다.
주간지 기자 무라야마 히로키씨(55)는 <후유노 소나타>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일본여성들이 ‘후유소나’를 좋아하는 것은 남편이나 일본의 과거 역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단지 일본여성들이 옛날 미혼이었을 적에 꿈꾸었던 시대로의 회귀현상과도 같은 겁니다.
실제로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지금까지 남편밖에 모르고 살아 온 전업주부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직장에 다니는 직업여성들은 욘사마나 그 드라마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아요. 조직사회 생활에서 살아남기도 벅차기 때문이죠. 특히 직장여성들은 남자에 대한 환상이 그다지 없어요. 대단히 현실적이죠. 그래서 쉽게 드라마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아줌마들의 광적인 반응이라고 무시하면 큰일나죠.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인터넷 네티즌이 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 냈듯이, 그저 평범한 아줌마들에 불과했던 여성들이 현재의 한류 붐을 이끌어 냈으니까요.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40·50이 넘은 아줌마들이 10대들이나 하는 피켓을 들고 공항에서 아우성치며 울부짖을 줄을.”
놀란 것은 일본 매스컴뿐만이 아니라고 무라야마씨는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지존의 욘사마’ 현상은 둘째 치고라도 우선 일본기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이 바로 자신들의 가족관계라고 했다.
“서로 얼굴조차 보기 싫어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공통의 화제를 찾고 남이섬에 함께 다녀왔을 만큼 관계가 좋아졌어요. 또 시누이-올케,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소원했었는데 화목한 우애를 되찾았다는 동료 기자들이 많아요. 왜냐하면 이 드라마에는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 따뜻한 가족간의 애정, 그리고 친구와의 우정, 선후배 관계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관계는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후유소나’는 일본사람들에게 그동안 잃어버렸던 순수함과 유교의식을 되찾아 준 드라마예요. 때문에 ‘후유소나’가 일본사회에 던져 준 의미와 그 과제는 매우 큽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매주 ‘욘사마’에 대한 기사를 싣는 것을 기본편집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연예전문 주간지 <여성세븐> 기자의 말이다.
그는 개인적인 배용준의 인기보다도 그 드라마로 인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어느 정치인도 해내지 못했던 한일간의 우호를 <겨울연가>라는 드라마 한 편이 간단하게 해결했다는 것.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일본 내각이 지난 10월에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고 대답한 일본인이 56.7%에 달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30%대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
흥미로운 것은 <후유노 소나타>나 ‘욘사마’에 빠진 일본여성들의 성향이 매우 조신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지금까지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다소 보수적이면서 배타성이 강한,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순진무구형의 전업주부들이라는 것.
“진짜 바깥바람이 든 여성들은 저렇게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욘사마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지요. 아마 호스트바를 찾거나 록본기에 가서 서양남자들을 상대합니다.
하지만 욘사마를 떠받들고 한국 배우들을 좋아하는 일본 여성들은 대부분 순수파들이에요. 욘사마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것은 좋아하지만 남성 성을 일컫는 ‘섹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여성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성적인 성향으로 욘사마를 좋아했다면 어느 한 순간에 좋아했던 마음이 금방 사그라들겠지요. 또 다른 한국 남성 연예인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지 않고요. 그리고 한류열풍으로도 연결될 수가 없었고요.
그런데도 한국매스컴과 일부 일본 언론들은 이 같은 성향의 일본 여성들을 아주 천박한 행동으로 몰아 갑니다. 정말 위험한 판단이지요. 내용은 정반대인데도 말이죠.”
‘텔레비 아사히’ 보도국의 구마가이 준이치씨의 이야기다.
구마가이씨는 또한 자신은 개인적으로 욘사마에 푹 빠진 부인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선 잔소리가 일체 사라졌다는 것이다. 취재로 늦게 들어오거나 술을 먹고 들어와도 늘 콧노래(물론 겨울연가 배경음악)를 부르며 컨디션이 최상이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해졌다는 것. 그래서 자신은 ‘욘사마’에게 절을 하고 싶을 만큼 고마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