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현 ‘카가미가하라시 파크’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전시된 겨울연가 영상사진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 ||
일본인들의 특징은 “천천히 뜨거워져 느릿느릿 식는다”는 것이다. 빨리 뜨거워져 빨리 식는 우리 한국인의 기질과는 정반대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이 같은 일본인의 성향과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갑자기 뜨거워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뜨거운 열풍이 광풍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욘사마’,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듯 배우 배용준을 일컫는 일본어의 극존칭이다. 요즘 일본에서 이 ‘욘사마’를 모르면 외계인이라고 할 정도로 하나의 고유명사로 이미 오래전에 정착됐다.
최근에는 ‘욘사마’에 이어 이병헌을 가리키는 ‘뵨사마(일본인들이 병이란 발음을 잘 못해 뵨이라고 부른다), 권 상우를 일컫는 ‘곤(이 역시 권의 발음)사마’까지 등장했다.
특히 지난 12월에는 배용준 박용하 권상우 류시원이 일본을 방문하자 일본 TV 연예 전문 프로그램이 한국방송인 줄 착각을 줄 정도로 이들에 대해 집중 보도를 했다.
민방의 어느 한 캐스터는 이들의 일본방문에 대해 ‘한류 스타 또다시 일본을 강타했다’고 표현했다.
그렇다. 2003년까지만 해도 일본언론은 ‘한류’라는 문구를 그다지 즐겨 쓰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비록 자신들(언론사 혹은 언론인)이 독자나 시청자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마지못해 직업상 따라다니며 취재를 할망정, ‘욘사마’ ‘겨울연가’ 붐은 그저 지나가는 일시적 바람이려니 하고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 일본 여성들이 배용준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 ||
“한류라고까지 할 정도로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인에게 깊게 파고들었다고는 생각 안 해요. 할 일 없는 아줌마들이 시간이 남아돌아 한국드라마의 신선함에 잠시 열광하는 것뿐이지, 겨울연가나 욘사마 그리고 그 아류를 잇는 한국연예인들의 일본진출을 결코 한류라고 단정지어 표현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그 기자를 만났을 때 그의 이야기는 2003년과는 확 달라져 있었다.
“한국스타들의 흡인력이 이렇게 강한 줄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 기자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한류 붐이에요. 요즘 우리 일본기자들은 독자나 시청자들의 시선을 따라잡기에도 벅찹니다. 한국에 대한 연예정보도 우리기자들보다 그들이 더 많이 알고 있고요. 한국 스타들이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해일과도 같은 한류 붐이 일본열도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언론들은 그동안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던 ‘한류’라는 표현을 올해부터는 자주 인용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일본언론들이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한류 붐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한류 붐을 눈치 채고 한국연예인들에 대한 책을 재빨리 출판해 재미를 톡톡히 본 기성 출판사들과는 달리, 일본언론들은 뒤늦게 특집 등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때문에 지금은 ‘한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일본언론에서 인용되고 있다.
그럼 왜 일본언론들은 굳이 의도적으로 ‘한류’를 무시해왔을까?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경계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 춘천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기후 현의 ‘카가미가하라시 겨울연가 파크’. | ||
“일본인들이 가장 경계하고 거부감을 갖는 것은 한국인들이 과거를 거론하는 겁니다. 즉 한류를 인정하면 곧바로 한국인들이 과거 역사를 근거로 일본의 문화 뿌리는 한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한류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언론들도 그동안 배용준의 인기가 일시적인 바람이라고 평가절하해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배용준이 두 번째 일본을 방문할 때, 첫 번째 방문보다 일본 팬들이 더 열광하고, 내로라하는 민방인 TBS-TV(마이니치신문 계열)가 나리타 공항에서 아카사카의 호텔까지 헬기를 동원해 생중계를 하자, 그때서야 국내 언론들도 깜짝 놀라 부랴부랴 ‘한류’ 특집을 내보냈던 것이다.
이렇듯 한류 붐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본사회의 아웃사이더, 즉 ‘아줌마군단’에서부터 화려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