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톱스타들이 출연한 <씨받이(강수연)> <고래사냥(이미숙)> <깊고 깊은 푸른 밤(장미희)> <뽕(이미숙)> 등은 수십 명, 혹은 1백~2백 명 규모의 변두리 소극장에서 상영된 후, 비디오 대여가게에서는 포르노 영화 코너 바로 옆에 비슷한 등급으로 진열되기 일쑤였다.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의 한국영화는 3만달러 미만에 들여올 수 있는 싸구려 3류 영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류를 자부하던 일본 영화의 수준이 점점 추락하던 90년대 중반 틈새시장을 뚫고 들어 온 것이 한국영화였다.
요즘 한류 붐을 조성하는데 그 기초를 닦은 주인공인 일본 영화제작사 ‘시네콰논’ 이봉우 사장의 말이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칸 영화제에서 <서편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그런 수준 높은 영화가 있는 줄 몰랐다는 것.
그래서 그는 서울의 제작사를 찾아가 <서편제>를 10만달러에 사겠다고 먼저 제의를 했다고 한다. 놀란 것은 제작사. 그때까지도 한국영화가 3만달러 이상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는 것.
“수준 있는 작품답게 일류극장에서 상영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그 나라 얼굴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극장주를 설득해서 긴자에서 개봉을 하게 됐습니다.”
관객동원은 15만 명. 기존의 한국영화가 2~3만 명에 불과하던 성적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성과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가 있었던 것은 <서편제>가 ‘한국영화는 싸구려 3류다’는 인식을 바꿔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후 이봉우씨는 또다시 거액의 엔화를 주고 <쉬리>를 수입, 1백30만 명의 관객 동원을 했다. 그때부터 일본 영화배우들 사이에 유행되던 말이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라는 것이었다. 탄탄한 구성,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 할리우드 영화 버금가는 한국배우들의 파워풀한 명연기, 그리고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삽입되는 잔잔한 러브 스토리 등, 한국영화가 일본영화보다 한 수 위라는 인식이 서편제-쉬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확실하게 굳어졌다. 오죽했으면 일본의 내로라하는 영화감독이 텔레비전 생방송에 나와서 ‘한국영화에 졌다’라고 패배선언을 했을까.
만약 <서편제>, <쉬리>, <친구> 같은 한국영화가 일본에서 몇 년에 걸려 그 기초를 닦아 놓지 못했다면 <겨울연가>는 절대로 일본에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서편제로 시작된 한국영화의 일본진출은, 나중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 <엽기적인 그녀>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로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올해 상영된 <실미도>는 약 25만 명,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간신히(?) 50만 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