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장사 강신호씨 | ||
강씨에 따르면 사극분장의 ‘핵심’은 바로 수염이라고 한다. 수염은 생사, 인조사로 만들어진 두 종류를 섞어 ‘스프리트 껌’을 이용해 세심하게 붙인다. 인물별로 수염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제작해두고 쓰기도 하지만 주연급의 경우엔 매번 수작업으로 모양을 변형해 만든다고 한다. 강씨는 “최수종씨의 경우 분장하는 데만 1시간~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며 “턱선이 뾰족한 편이어서 아래쪽을 숱이 많도록 붙여 얼굴선이 굵어보이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사극 촬영장에는 ‘분장차’가 항시 대기중이다. 분장차 내부에는 갖가지 분장도구와 가발들이 즐비했다. 메이크업 박스 안에 담겨진 분장도구만 어림잡아 서른 가지가 넘어보였다. 가발은 인물별로 이름이 붙여진 비닐봉투에 하나씩 보관돼 있었다. 때마침 극중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장성필 역으로 등장하는 도기섭씨가 수염을 붙이기 위해 차안으로 들어섰다. 수염을 꼼꼼하게 매만지는 강씨의 손놀림이 매섭다. 강씨는 “아무래도 비중이 적은 조연급 연기자들은 분장에도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이름 모를 엑스트라의 경우 단 10초 만에 분장을 끝낸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덧붙여 중국 로케이션 촬영에서의 에피소드도 전했다. 지난해 8월 두 달 동안 진행된 <해신>의 중국장면 촬영에서 중국 배우들의 메이크업은 중국 분장사들이 투입돼 맡았었다고. 강씨는 “거기서는 수염을 수작업으로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들이 일일이 핀셋을 이용해 손으로 붙이는 것을 보고는 굉장히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강씨는 최수종이 주인공 ‘장보고’ 역으로 캐스팅됐을 때 고심도 많았다고 한다. <태조왕건> 등 여러 편의 사극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고, 또 그로 인해 ‘식상하다’는 지적도 많았던 것. 더구나 쌍꺼풀 짙은 눈매는 사극 연기자로서 단점이라고 생각한 강씨는 “최수종에게서 장보고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최수종 또한 스스로 “난 이 쌍꺼풀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굵은 쌍꺼풀을 가진 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사극 분장의 핵심인 수염은 생사와 인조사를 ‘스프리트껌’으로 붙여 만든다고. 장보고 역의 최수종(왼쪽)과 설평 역의 박영규. | ||
또 <해신>의 배경이 되고 있는 통일신라 시기는 사극으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때라, 고증을 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해신>이 ‘퓨전사극’의 성격을 띠고 있어 어느 정도 ‘창조’를 가미한 인물의 캐릭터는 분장과도 엄밀히 연계되는 부분.
따라서 사극 분장은 그 어떤 장르의 작품에서보다 중요시된다. 연기자 본인들도 연기만큼 분장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동근과 같은 ‘사극대가’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염모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분장담당에게 미리 ‘주문’을 하기도 한다.
강씨는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과 함께 작업하며 작은 마찰이 빚어졌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유동근이 제시한 수염 모양과 강씨의 의견이 서로 엇갈렸던 것. 잠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은 유동근이 강씨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강씨는 “유동근 김무생 서인석 변희봉 이덕화 임혁 등이 사극 분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씨가 분장일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엔 지금처럼 좋은 재료와 도구들이 없던 때. 당시엔 분장사라는 직업이 전문화돼 있지 않아 배우들이 서로의 분장을 해주기도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강씨는 “옛날엔 소나무의 송진을 액으로 조제해 그것으로 수염을 붙이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손꼽는 것은 89년도 작 <지리산>이라고 한다. 13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한 달에 2~3일 정도만을 쉬었고, 한겨울 장면을 찍으며 동상에 안 걸린 스태프들이 없었을 만큼 고생했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